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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유

by 류.. 2005. 12. 14.

 

 

 

          투명한 것은 날 취하게 한다
          시가 그렇고
          술이 그렇고
          아가의 뒤뚱한 걸음마가
          어제 만난 그의 지친 얼굴이
          안부 없는 사랑이 그렇고
          지하철을 접수한 여중생들의 깔깔 웃음이
          생각 나면 구길 수 있는 흰 종이가
          창 밖에 비가 그렇고
          빗소리를 죽이는 강아지의 컹컹거림이
          매일 되풀이 되는 어머니의 넋두리가 그렇다

          누군가와 싸울 때마다 난 투명해진다
          치열하게
          비어가며
          투명해진다
          아직 건재하다는 증명
          아직 진통할 수 있다는 증명
          아직 살아 있다는 무엇

          투명한 것끼리 투명하게 싸운 날은
          아무리 마셔도 술이
          오르지 않는다

           

           

          최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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