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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찻집

by 류.. 2005. 10. 20.

         


              누구나 바다 하나씩 가지고 산다.
              가까이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 찻집에 앉아
              옛사랑을 그리며
              반쯤 식어버린 차를 마신다

              파도는 유리창 너머에서 뒤척거리고
              주인은 카운터에 앉아 
              오래된 시집을 읽고 있다

         

              이윽고 문이 열리고
              찻집보다는 선술집이 더 어울릴 것 같은
              사내들이 와르르 몰려든다

              주인은 시집을 덮고,
              바다가 정면으로 보이는 확트인 유리창 곁에
              그 사내들의 자리를 권하고
              다시 시집을 펼쳐든다

              벽난로에는 장작이 타들어간다.
              주인은 주문을 받지도 않고
              사내들은 주문을 하지도 않는다


              그러다가 사내들은 떠나가고
              주인만 홀로 빈 찻집에 남게 될 것이다

              온종일 수평선만 바라보다가
              지쳐 귀머거리가 되어버린,
              그 바닷가 찻집에 파도처럼 왔다가
              훌쩍 떠나버린 사람들이
              어디 그들 뿐이었겠는가

         

              주인은 마음으로 시집을 읽고
              사내들은 말없이 빈 바다를 마신다.
              가득했던 내 찻잔도 서서히 식어갈 때
              옛사랑에 대한 기억도 조금씩 잊혀져 가고
              내 손에 전해져 오는 냉기와
              콧속으로 파고드는 짭짤한 바다의 냄새...

              내 마음 역시 그들과 함께
              빈 바다를 마시고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될 것이다.
              바닷가 빈 언덕에서 찻집을 하는
              주인의 마음을 조금씩 알게 될 것이다

              누구나 마음 속에
              껴안을 수 없는 사랑 
              하나씩 안고 산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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