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고향의 목마른 황톳길을 그리워하듯이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것은그대가 내게 오래오래 간직해 준
그대의 어떤 순결스러움 때문 아니라
다만 그대 삶의 전체를 이루는, 아주 작은 그대의 몸짓 때문일 뿐
이제 초라히 부서져 내리는 늦가을 뜨락에서
나무들의 헐벗은 자세와 낙엽 구르는 소리와
내 앞에서 다시 한 번 세계가 사라져가는 모습을
내가 버리지 못하듯이
내 또한 그대를 사랑하는 것은
그대가 하찮게 여겼던 그대의 먼지, 상처, 그리고 그대의
생활 때문일 뿐
그대의 절망과 그대의 피와
어느 날 갑자기 그대의 머리카락은 하얗게 세어져 버리고
그대가 세상에게 빼앗긴 것이 또 그만큼 많음을 알아차린다 해도
그대는 내 앞에서 행여
몸둘 바 몰라 하지 말라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것은
그대의 치유될 수 없는 어떤 생애 때문일 뿐
그대의 진귀함 때문은 아닐지니
우리가 다만 업수임받고 갈가리 찢겨진
우리의 조국을 사랑하듯이
조국의 사지를 사랑하듯이
내가 그대의 몸 한 부분, 사랑받을 수 없는 곳까지
사랑하는 것은
김 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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