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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문 강을 이름 붙이려 함

by 류.. 2005. 9. 7.

 

 


아버지는 강을 키운다 여름 내내
물을 거슬러오르며 덜 자란 돌을 골라내면서 애야,
그물은 그렇게 빨리 올리는 게 아니다,
에, 알았어요, 누이는 어디로 갔을까 갈대가 움직일 때마다
나는 누이의 옷 벗는 소리를 기억하지만
누이는 아무래도 멀리로 가버린 것 같다
메기가 많이 올라오네요,
모래톱에 누우면 피들이 몰려다니는 소리를 듣고
문득 유성을 찾아내기도 하면서 아버지가 일구는
산과 상류의 길을 잊어버리기도 한다
안동에서 올라오는 밤열차가 환하고
돌들이 나의 잔등 속으로 뿌리를 올려보낸다
누이는 늘 바람의 끄트머리 몇 가닥을 만지고 있었다
대장간 집 아들이 갈대 숲으로 달려간 후로
누이는 홀로 울고
부엉이 부엉 부엉 솔숲에서 기다릴 때 아버지, 배에
닻줄을 묶어놓지 않았나봐요, 그리고 누이는 집을 나갔다
저문 강
아버지의 담배연기를 실어나르는 저문 강은 고요하다
아버지는 나를 위해 강을 키운다 한다
아버지는 나를 위해 그물을 말린다 한다
안동으로 내려가는 화물열차가 강에서 머뭇거리고
메기들이 금잔디 동산에서 마르는 여름
가끔 아버지는 저문 강으로 나가 돌을 던진다
돌을 던진다 그 돌은 어둡고 강은 어두운 만큼
어두운 파문을 강가로 돌려보내고
아버지의 자꾸 길어지는 그림자가 나를 부르고 있다

 


 

이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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