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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맛집

금산,적벽강

by 류.. 2005. 8. 27.
    

 

금강의 상류인 적벽강

때로는 강물처럼 흐르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한 자리에서 빙빙 돌며 고여 있는 물이 아니라 거침없이 흐르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그런 시간이 찾아오면 충남 금산군 부리면 수통리 적벽강(赤壁江)을 찾아갑니다.

적벽은 송나라 시인 소동파가 배를 띄워 놀았던 곳이지만 이 땅에도 적벽이 많이 있습니다. 서해 변산반도에도 있고 화순에도 있고 여기 금산(錦山)에도 있습니다. 아참, 금산이 금수강산(錦繡江山)의 준말이라는 것을 금산에 와서 알았습니다.

금산에는 아름다운 능선을 가진 산들이 끝없이 이어지고 그 사이로 강이 흐릅니다. 금산의 강이니 당연히 금강(錦江)입니다. 8백 리 금강은 전북 장수 신무산 뜬봉샘에서 발원을 하는데 그 물길이 장수, 무주를 지나 금산에 접어들면서 처음으로 강의 모습을 갖는데 그 강이 적벽강입니다.

금강의 상류이지만 강이 흐르는 물길을 따라 붉은 바위산들이 절경을 이루고 있어 적벽강이라 이름하는 것입니다. 수십 미터 높이의 붉은 바위산들이 벽처럼 서 있고 물길은 그 적벽의 반영되는 그림자를 다 담을 수 있을 만큼 넓고 맑습니다.

유월의 적벽을 녹음이 무성하게 덮고 있었지만 그 사이 사이 비치는 붉은 빛은 그대에게 감추지 못하는 내 마음처럼 두근두근 빛나고 있습니다. 그 아래로 비단을 풀어놓은 것 같은 푸른 물은 그 붉은 마음 고스란히 비추며 유유히 흘러가고 있습니다.

  

 

강물처럼 흐르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나는 천천히 20리쯤 되는 적벽강을 따라 걸어봅니다. 강물의 속도로 걸어가노라면 나는 어느새 강물이 되고 내 몸에 푸른 하늘 흰 구름을 담고서 흘러갑니다. 그렇습니다. 강은 바라보는 것도 좋지만 강과 함께 걸어보는 일, 걷다가 강과 한 몸이 되어 보는 일도 즐겁고 신나는 일입니다.

내게 강의 아름다움에 눈뜨게 한 사람은 소월(素月)입니다. 나는 국어시간 김소월의 시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를 배우며 처음으로 강을 꿈꾸었습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 세상을 떠돌면서 이 땅에는 내가 꿈꾸었던 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한국의 근대화와 공업화로 강은 이미 상처로 변해있었습니다. 제 몸을 온전하게 지키고 있는 강을 만나기가 어려웠습니다.

다행스럽게 적벽강은 아직도 강의 원형질을 가지고 있는 강입니다. 내가 '아직도'라는 부사어를 사용하는 것은 두려운 예감 때문입니다. 사실 지난해 가을 적벽강을 찾았을 때보다 강 주변이 많이 망가져 있었습니다. 아스팔트 포장 길도 많이 생겼고, 별장처럼 보이는 집들도 많이 들어섰습니다.

보석처럼 빛났던 강원도 동강이 짧은 시간에 아주 빠르게 부서지는 것을 그대도 보았을 것입니다. 섶다리가 놓여 있던 자리에 시멘트 다리가 들어서는 것을 보고는 다시 동강을 찾아갈 수 없었습니다. 동강에게 미안했기 때문입니다.

적벽강은 어떤 산수화 보다 아름답습니다. 아름답기에 사람들의 욕심이 이 강을 그냥 두지 않을 것입니다. 아름다움은 부서지기 전에 지켜야 하는데, 적벽강 상류 쪽으로 바위산을 부수고 새 길을 낸다는 이야기를 적벽강을 사랑하는 임영봉 시인에게서 듣고 많이 우울해집니다.

내 예감이 기우이길 생각하며 강변 미루나무 아래에 서 봅니다. 나는 내 사랑의 자세가 미루나무 같았으면 합니다. 강바람의 호명에 미루나무는 제 몸의 잎들 하나도 빠지지 않고 뜨겁게 손을 흔듭니다. 사랑이란 강바람 앞의 미루나무처럼 저렇게 환호하는 것입니다. 나는 적벽강에서 오랜만에 많이 편안합니다.

강변에서 그대에게 주려고 조약돌 하나 주워 주머니에 넣었다가 아차 싶어 다시 내려놓습니다. 그건 분명 내 욕심이었습니다. 적벽강의 조약돌은 적벽강에 있을 때 아름다운 것입니다. 세상 모든 것들이 그러합니다. 모든 것은 제 자리에 있을 때 빛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양쯔강의 적벽에서 노닐던 소동파도 '적벽부'(赤壁賦)에 이른 말을 남겼습니다.
'천지 사이 사물에는 제각기 주인이 있으니 나의 소유가 아니면 한 터럭도 가지지 말 것이니'




여행수첩------------
충남 금산은 대진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찾아가기 편안하다. 무주 나들목을 지나면 금산 나들목이 나온다. 기차를 이용할 경우 대전역에 내려 대전동부터미널에서 금산행 시외버스를 타면 된다. 금산에서 적벽강까지 시내버스가 다닌다.
인삼의 고장 금산은 우리나라 3대 약령시이며 2, 7에 열리는 금산장도 우리나라 3대 장날로 손꼽힌다. 인삼과 토종 한약재가 지천이다. 인근에 남이 자연휴양림, 칠백의총, 태고사, 보석사 등의 명소가 있다. 인삼의 고장이나 삼계탕도 유명하고, 적벽강 적벽교 앞 '수통리 종가집'(041-752-0229)의 인삼어죽도 별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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