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저는 매일 조금이라도 걸으려고 합니다 전에 없이 밖으로 나가고 싶은 유혹에 시달리고 있지요 이건 순전히 계절 탓일겁니다 그냥 책상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는 게 왠지 억울한 날들의 연속... 나만 그런게 아니겠지요? 오늘 같은 좋은 날.. 창 밖에 혼자 놀고 있는 햇살이 아까워 미칠 지경입니다 요즘 같은 때 가만히 자리를 지킨다는 건 어째 자연을 지으신 그 분을 모독하는 일 같기도 하고... 며칠 전엔 계룡산에 갔다가 지난 해 태풍때 변을 당했을 산의 절개지에서 노란 산국이 겨우 실 뿌리 몇 가닥만을 흙에 묻고 죽을힘 다해 꽃 피우는 걸보고 그 삶 하도 처절하고 눈물겨워 걸음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몇 십 년 아름드리 나무가 뿌리를 허공에 두고 누워있는 건 또 얼마나 억장 무너지는 일인지 모릅니다 요즘은 산을 걸으며 살아남은 자들은 그들끼리 서로 조용히 말 한마디 없이 상처를 안아주고 다독여주는 것을 자주 목격하게 됩니다 정말 눈물겨운 일이지요 흘러서 아름다운 것들도 알고 보면 상처 때문이라 하겠는데 지난 해 태풍에 숲은 너무 많은 상처를 안게 되었습니다 그 상처들 아물어 새살이 돋을 때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기다릴 수 없는 인간들은 그것을 끝이라 하고 기다림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은 자연은 시작이라 합니다 같은 것을 두고 시작 혹은 끝이라고 다르게 말 할 수 있는 인간과 자연은 그래서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한 것이겠지요 창 밖이 너무 눈부십니다. 저 맑은 빛 아래에선 모두 그대로 시가 됩니다 이 놀라운 솜씨로 자연을 빚은 신을 욕되지 않게 하려면 어슬픈 어휘로 아름다움에 누를 끼쳐선 안되겠고 그냥 묵묵히 즐기는 것만이 인간이 해야할 몫이고 도리인 듯 싶습니다 계절탓만 하지말고 떨쳐 일어나야겠습니다 뭔가 아름다운 죄 짓고 싶은 가을 아침에는..... 2004.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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