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정원에는 배롱나무꽃이 가득하다.
세상을 버리고 향리로 돌아온 후
마음에 새겨둔 그리움은 없었지만
염천의 더위를 이끌고 여름이 지나가는 길목이면
옛 선비가 머물렀던 뜨락에 열꽃처럼 붉은 자미화가 피어오른다.
花無百日紅이요 人無千日好라
꽃은 피어서 백일 동안 붉은 수 없고
사람은 천 일이 지나도 한결같이 좋을 수 없으니
지나간 무엇이 한스러울 수 있으랴만
뜨거운 태양 아래 구름처럼 일어나는 꽃들은
생의 모진 미련과 애모를 보여 주는 듯하다.
주렴에 머물던 달빛처럼 다정하고
바위 위에 떨어진 씨앗처럼 굳건하였건만
세월이 망각의 선율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이기낀 섬돌에는 폐허의 노래가 머물고
그림자를 잃은 연못의 물빛 위에는
부치치 못한 편지처럼 꽃들이 떨어진다.
보랏빛의 안쓰러운 발자국을 남기며
긴 여름날의 해가 저문다.
이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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