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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면 다 꿈이고

by 류.. 2017. 5. 22.

 

 

 

담장 밖을 넘나드는 넝쿨 때문에

울안에 심지 말라는 능소화가

가슴에 커다란 주홍 글씨를 달고서도

해마다 아프게 꽃을 피우고 있다

 

지울 수 없는 낙인처럼

저 주홍의 꽃가루에 눈멀 수 있다는

흉흉한 소문도 있지만

그렇게 눈멀어서인지

사랑에 눈멀어서인지

날벌레 한 마리 그 속에 파르르 졸고 있다

 

잠들면 다 꿈이고

꿈은 언젠간 깨는 것이어서

누구라도 맹목의 사랑 앞에선 꿈꾸듯 눈이 머는지

깨어나기 전까지

저 하루살이도 꿈에선 꽃일 터

 

그러나 꿈은 길어도 하룻밤

그 바람 앞의 단잠 깨우지 않으려

꽃도 향도 모르는 척 담장 밖을 서성이는데

 

누구

꿈과 사랑의 차이를 아시는지

꿈은 꿈인 줄 모른 채 울다 깨어나도

사랑은 아무리 흔들어도 깨어날 수 없는




 

 

- 박이화, 시집 흐드러지다, 천년의시작, 2013

 

 

 

 

 

꽃별 해금연주  - 수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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