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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그늘에 앉아 보렴

by 류.. 2017. 4. 10.





        벚꽃 그늘 아래 잠시 생애를 벗어 놓아 보렴.
        입던 옷 신던 신발 벗어 놓고
        누구의 아비 누구의 남편도 벗어 놓고
        햇살처럼 쨍쨍한 맨몸으로 앉아 보렴.
        직업도 이름도 벗어 놓고
        본적도 주소도 벗어 놓고
        구름처럼 하이얗게 벚꽃 그늘에 앉아 보렴.
        그러면 늘 무겁고 불편한 오늘과
        저당 잡힌 내일이
        새의 날개처럼 가벼워지는 것을 알게 될것이다.
        벚꽃 그늘 아래 한 며칠
        두근거리는 생애를 벗어 놓아 보렴.
        그리움도 서러움도 벗어 놓고
        사랑도 미움도 벗어 놓고
        바람처럼 잘 씻긴 알몸으로 앉아 보렴.
        더 걸어야 닿는 집도
        더 부서져야 완성되는 하루도
        도전처럼 초조한 생각도
        늘 가볍기만 한 적금통장도 벗어 놓고
        벚꽃그늘처럼 청정하게 앉아 보렴.
        그러면 용서할 것도 용서받을 것도 없는
        우리 삶
        벌떼 잉잉거리는 벚꽃처럼
        넉넉하고 싱싱해짐을 알 것이다.
        그대, 흐린 삶이 노래처럼 즐거워지길 원하거든
        이미 벚꽃스친 바람이 노래가 된 벚꽃 그늘로 오렴.

                    


        이 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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