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音樂

Mascagni, Cavalleria Rusticana 中 Voi lo sapete o mamma/Licia Albanese

by 류.. 2016. 2. 1.





1890년 5월 17일 밤, 무명의 청년작곡가 마스카니가 작곡한 1막짜리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가

로마의 콘스탄찌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청중은 극장에 반도 차지 않았었다는데,

막이 내림과 동시에 귀가 멀듯한 열광적인 박수가 터져나왔다.

그 때 27세였던 마스카니는 무려 20회나 스테이지에 불려나가서 박수에 답했다 한다.

그러면 그 날의 청중들은 왜 그렇게 열광했을까.

 

그 까닭은 그때까지 상연되어온 오페라가 한결같이 로맨틱하고 거의가 3막으로 된 스케일이

큰 작품이었는데 반해, 그날 밤 오페라는 비록 1막짜리 작은 오페라이면서도 내용은 풍부한

이탈리아적 선율로 일관되고, 줄거리가 아주 리얼해서 압도적인 박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베리스모(verismo), 즉 현실주의 오페라는 이렇게 탄생한 것이다.

 이 베리스모는 프랑스 자연주의 문학의 영향을 받고 바그너의 악극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난 것인데,

일상생활 특히 하층계급의 일상생활에서 일어난 현실적 사건을 다룬다.

그리고 아주 생기있는 멜로드라마를 전개시킴으로써 정(靜)과 동(動), 격정(激情)과 서정(抒情)을

강력히 대비시키고 클라이맥스에 비참한 결말을 두어 대중에게 직접 호소하는 효과를 나타내었다.

 

이 오페라는 이탈리아의 작가 베르가(G. Verga)의 동명의 단편소설에 의해

마스카니의 두 친구가 대본을 썼다.

원작의 소설은 희곡으로도 상연되어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 것인데, 마스카니는 로마의

한 악보출판사가 1막짜리 오페라를 현상모집한 데 응할 목적으로 이 오페라를 썼던 것이다.

심사 결과 이 오페라가 1등으로 당선되어 당시 시골 학교에서 음악교사를 하던

마스카니의 이름은 일약 세계적인 것이 되었다.





이 오페라의 등장 인물들 중 가장 중요한 인물은 프리마돈나인 산투차이다.

이 역은 소프라노로서는 무거운 드라마틱으로 깊고 격정적인 표현이 요구되는 만큼

소프라노에게는 만만치 않은 역할인데.. 많은 소프라노들이  산투차를 노래했지만

Fiorenza Cossotto 를 제외하고는 Licia Albanese 만큼 감정표현이 풍부한

산투차는 없었던 것 같다 100살이 넘도록 살았으니 역사상 가장 장수한 소프라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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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이탈리아 바리(Bari)에서 태어난 리치아 알바네스는 1934년 고향 바리에서 미미(라 보엠)로 오페라에 첫 데뷔하였다. 이듬해

 그는 이미 라 스칼라의 무대에 설 정도로 급성장의 재능을 보여주었다. 라 스칼라에서는 자니 스키키에서 로레타(Lauretta)를 맡았다.

뛰어난 음성과 무대에서의 존재는 음악적 명성과 함께 세계 각국에 불길처럼 알려지게 되었다. 특히 1940년 메트로의 초청공연은

대단한 격찬을 받은 것이었다. 그는 메트로 데뷔에서 카르멘과 나비부인의 타이틀 롤을 맡았다. 1945년 그는 미국 시민권을 받아

 메트로의 주역으로서 26 시즌을 활동했다. 이 시즌동안 그는 무려 17개 역할로서 427회의 출연을 하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

뿐만 아니었다. 그는 샌프란시코 오페라에서도 20시즌 동안 120회의 공연을 하였다. 샌프란시스코 데뷔는 역시 나비부인이었고

역시 눈물바다를 이루게 만든 것이었다. 그는 대단히 진지하게 공부하는 성악가였다.  그는 후배들에게  ‘누구든지 오페라의

주역을 맡았으면 1년 이상 깊이 있는 공부를 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무대에 설 자격이 없다’ 라고까지 말한 바 있다.


그는 영화에도 몇차례 출연하였다. 1956년 마리오 란자 주연의 세레나데에 출연하여 오페라 아리아를 부른 것은 잘 알려진 사실

그러한 공적 때문에 할리우드 스타의 거리에는 그의 이름이 새겨진 별모양의 동판이 설치되어 있다. 그는 나비부인뿐만 아니라

비올레타에서도 말할 수 없이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었다. 유명한 소프라노 버질 톰슨(Virgil Thompson)은 그의 비올레타를 보고

 ‘그는 그 역할을 노래 부르지 않았다. 그는 우리의 시대를 위한 비올레타를 재창조하였다’ 라고 말했다. 그의 대표적인 역할은

나비부인, 비올레타, 미미, 미니(황금서부의 아가씨) 등이다. 그의 푸치니에 대한 열정은 끝이 없다. 오페라 무대에서 은퇴한

그는 ‘리치아 알바네스-푸치니재단’을 설립하여 90세가 넘을 때까지 후진 양성을 위한 활발한 활동을 펼치다가 2014년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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