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 식단은 점점 서구화 되어가고 있지만 아직도 예전부터 내려오는 토속음식을 그리워하는 인구도 늘고 있다. 밥이 보약'이라는 말이 있다.
제철에 나는 식재료로 정성을 담아 차린 밥상이면 열 보약이 필요 없다는 뜻일 게다.봄이면 흙에서 갓 뽑아 올린 듯 향긋한 냉이에 참기름 한 방울
살짝 떨어뜨려 조물조물 무쳐내고,여름이면 햇빛을 가득 머금은 연초록 호박잎을 살짝 쪄 강된장과 함께 내며, 가을이면 구수한 집된장에 호박 숭숭
썰어 넣고 찌개를,그리고 겨울이면 가으내 말린 연한 시래기를 무쳐 상에 올린다면,이것이 바로 자연에서 그대로 얻어지는 보약 아니겠는가.
대전시 서구 용문동에 있는 토속한정식 전문 ‘살구나무집’이 바로 그런 곳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집이다. 늘 한상궁 같은 주인 진말자(48)씨가
13년간 음식을 만들어 온 곳이다. 이미 웬만한 미식가들 치고 이집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저렴한 가격과 정갈한 음식으로 입소문이 자자하다.
음식보다 더 맛깔스런 주인장의 입담과 넉넉한 인심에 반해 단골이 된 손님도 부지기수.
방에 들어서니 세월의 때가 묻은 가구며 생활 집기들이 그대로 놓여 있어 내 집처럼 편안함을 준다. 40여 가지나 되는 전통 음식들이
온기가 채 가시기 전 차례차례 들어오기 시작하는데, 우선 신선한 회와 매콤새콤 무친 중간 크기의 자연산 굴이 미각을 자극하기 시작한다.
이어 신김치에 돼지수육과 남도의 진미 홍어회를 얹어 입안에 넣으면 알싸한 맛과 향이 머릿속까지 뚫고 들어오는 듯하다. 여기에 충북 산골에서
직접 담가온다는 동동주 한잔 쭉 들이켜면 일명 ‘홍탁삼합’. 점점 다음메뉴가 기다려지는 순간, 널따란 석쇠위에 빨갛게 양념된 돼지불고기가 지글
지글 소리를 내며 바로 공수된다.
숯불에 구워 기름기가 쪽 빠지고 매콤한 맛이 은은한 참숯의 향이 어우러져 입에 착착 달라붙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조개탕 국물
한 수저를 더하면 ‘어~ 시원하다!’ 탄성이 절로 나온다.
야채를 듬뿍 넣어 기름지지 않게 만든 잡채, 담백함을 더하는 각종 전과 나물은 자극적인 음식에 취한 미각을 되살려 주는 중화제.
아니면 시원한 동치미를 국물과 함께 어석어석 씹어도 좋다.
본 식사에 나오는 우거지된장찌개와 돼지김치찌개는 다른 곳에선 찾아볼 수 없는 이집만의 별미. 집에서 직접 담근 된장과 김치만을 사용해
얼큰하고 시원한 맛이 단연 최고다. 같이 나오는 누룽지 한사발이 게 눈 감추듯 사라진다. 섬진강참게장과 함께라면 밥 한 공기도 뚝딱.
곳곳에 놓인 고등어조림, 조기구이, 버섯볶음 등도 꼭 한 번씩 맛봐야 하는 메인 요리. 점심엔 주부들이 좋아하는 낙지전골도 나온다.
‘한정식’ 하면 왠지 부담스럽고 격식 있는 자리에나 어울리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살구나무집’에서 만큼은 예외. “인스턴트에 지친 현대인의
입맛을 되살려주고 싶을 뿐 다른 욕심은 없다”는 주인 진씨의 소박함과 음식에 대한 정성이 늘 변치 않고 이어질 것을 기대한다.
최근 들어 웰빙(참살이)이니 뭐니 해서 시끌벅적하지만 따지고 보면 예로부터 즐겨먹던 우리 조상들의 먹거리 자체가 바로 참살이음식이
아닌가 싶다.집 가운데 25년 된 커다란 살구나무가 있어 살구나무집으로 상호를 썼다는 이집은 처음 찾아가는 사람은 찾기도 힘들다.
용문동 4가에서 중촌동 방향으로 가다 두 번째 골목에서 우회전해서 들어오면 보이지만 그 곳을 말로 설명하기가 여간 쉽지가 않다.
보기에도 건물이 낡아 보인다. 토속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통나무로 집을 꾸몄지만 오랜 세월은 모든 것을 허름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집에서 뿜어 나오는 전라도 음식 맛의 향기는 지나는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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