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너와의 만남에는 목적이 없었다
그러니까 헤어짐에도 제목이 없다
오다가다 만난 것들끼리는 오던 길 가던 길로
그냥 가면 된다, 그래야만 비로소
너와 나 들꽃이 되는 것이다
달이 부푼 가을 들판을 가로질러 가면
구절초밭 꽃잎들 제 스스로 삭이는 밤은 또 얼마나 깊은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서로 묻지 않으며
다만 그곳에 났으므로 그곳에 있을 뿐,
다행이다
내가 한 계절 끝머리에 핀 꽃이었다면
너 또한 그 모퉁이 핀 꽃이었거늘
그러므로 제목없음은 다행한 일이다
사람만이 제목을 붙이고 제목을 쓰고, 죽음 직전까지
제목 안에서 필사적이다
꽃은 달이 기우는 뜻을 헤아리지 않는다,
만약
인간의 제목들처럼 집요하였더라면 지금쯤
이 밤이 휘영청 서러운 까닭을 알겠는가
꽃대궁마다 꽃피고 꽃지고, 수런수런
밤을 건너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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