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물빛

by 류.. 2008. 10. 28.

 

 

 

      내가 죽어서 물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가끔 쓸쓸해 집니다


      산골짝 도랑물에 섞여 흘러 내릴 때,
      그 작은 물소리를 들으면서
      누가 내 목소리를 알아 들을까요?

      냇물에 섞인 나는 물이 되었다고 해도
      처음에는 깨끗하지 않겠지요


      흐르면서 또 흐르면서,
      생전에 지은 죄를 조금씩 씻어내고
      생전에 맺혀있던 여한도 씻어내고

      외로웠던 저녁, 슬펐던 앙금들을 한 개씩
      씻어 내다보면, 결국에는 욕심 다 벗은
      깨끗한 물이 될까요


      정말 깨끗한 물이 될 수 있다면
      그때는 내가 당신을 부르겠습니다

      당신은 그 물속에 당신을 비춰 보여 주세요.
      내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 주세요


      나는 허황스러운 몸짓을 털어 버리고 웃으면서,
      당신과 오래 같이 살고 싶었다고
      고백하겠습니다

      당신은 그제서야 처음으로 내 온 몸과
      마음을 함께 가지게 될 것 입니다


      누가 누구를 송두리 째 가진다는
      뜻을 알 것 같습니까

      부디 당신은 그 물을 떠서
      손도 씻고 목도 축이세요

      당신의 피곤했던 한 세월의
      목마름도 조금은 가셔지겠지요

      그러면 나는 당신의 몸 안에서
      당신이 될 것 입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죽어서
      물이 된 것이 전연 쓸쓸한 일이
      아닌 것을 비로소 알게 될 것 입니다

       

       

      마종기

         

''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이 있었네  (0) 2008.11.08
구절리역  (0) 2008.10.31
오지 않는 밤  (0) 2008.10.22
구례구역의 사랑노래  (0) 2008.10.15
가을꽃  (0) 2008.10.09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