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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맛집

복원된 마지막 주막-예천 삼강주막

by 류.. 2008. 5. 25.

 

 

       

       

                     어디든 멀찌감치 통한다는
                     길 옆
                     주막

                     그
                     수없이 입술이 닿은
                     이 빠진 낡은 사발에
                     나도 입술을 댄다.

                     흡사
                     정처럼 옮아 오는
                     막걸리 맛

                     여기
                     대대로 슬픈 노정(路程)이 집산(集散)하고
                     알맞은 자리, 저만치
                     위엄 있는 송덕비(頌德碑) 위로
                     맵고도 쓴 시간이 흘러가고…….

                     세월이여!

                     소금보다 짜다는
                     인생을 안주하여
                     주막을 나서면,

                     노을 비낀 길은
                     가없이 길고 가늘더라만,

                     내 입술이 닿은 그런 사발에
                     누가 또한 닿으랴
                     이런 무렵에.


       

                     -주막(酒幕)에서/김용호

       

       


       

      낙동강 700리 뱃길 따라 숱한 전설들이 이어지고, 이어지고 또 이어진다  그 끄트머리 어드메쯤 곡절 많은

      인생 굽이를 살다간 마지막 주모의 맵고도 쓴 사연을 간직한 주막이 있다  기나긴 밤, 기나긴 날들을 주막과

      함께 보낸 70년 전설 같은 삶. 주마등  같은 세월에 주인 잃은 주막에는 서럽게도 그녀의 주름만큼이나 굴곡

      깊었던 삶의 애환이 흙바람 벽에 또렷이 새겨져 있더라

      그 옛날, 그 주모가 앉았을 툇마루에 앉아 수많은 뱃사공들의 입술이 닿았을 이 빠진 사발에 입술을 대고 탁배기

      한 잔 들이킨다. 싸르르 목젖을 타고 내려가는 탁배기에서 옮아오는 텁텁한 정에, 고목나무서 울어대는 매미소리에

      세상을 등져간 주모에 대한 그리움이 일순 피어오른다.

       

      올해 3월, 새로이 복원된 삼강주막은새로이 주모를 맞았다. 물론 뱃사공들의 설움을 함께했던 과거의

      그 주모도, 과거의 그 주막도, 과거의 그 풍치도 사라진지 오래다. 허나 옛 이야기는 애잔한 추억으로

      묻어두고 삼강주막은 이제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주모는 뱃사공들이 지고 간 외상값을 흙벽에다 금을 그어 기억하고 있었다


      “흙벽이자나. 그래서 내가 동무랑 장난삼아 할매 안볼 때 줄을 손으로 긁어 없앴다 아이라.

      야~근데 기가 막히게 알대. 외상값이 얼마인지 정확히 안다 안카나. 완전 컴퓨타야 컴퓨타. 인간 컴퓨타.”
       

      곰방대를 문 머리 희끗희끗한 경북 예천 삼강리 촌로들이 그어진 금들을 가리키며 ‘이 금은 내 것’,

      ‘저 금은 내 외상값’ 이라면서 서로 자랑하듯 얘기한다. 토끼굴 같은 부엌 가득, 그어진 금들은 그들에게

      삼강주막을 홀로 지키다 세상과 이별한 유옥연 주모와의 마지막 추억으로 남아있었다. 글도 모르고 계산기

      사용법조차 몰랐던 늙은 주모는 그저 흙벽에다 손톱으로 금을 그어놓은 것으로 거래내역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

      말하자면 흙벽이 바로 그녀에겐 외상장부였던 것이다.

       
      “막걸리 한잔 외상하면 짧은 짝대기(금), 한주전자를 외상하면 긴 짝대기, 외상값을 다 갚아버리면

      길게 세로로 짝대기를 그었지 아마. 이제 보니 긴 짝대기가 별로 없네. 아무렴, 그 할마이가 그렇게

      깐깐하진 않았지. 무뚝뚝하지만 속정도 깊고….
       

      과연 검게 그을린 부엌 곳곳에 주모의 흔적들이 또렷이 남아있었다. 삼강리 주민들은 아직도 ‘주모’ 하면 반가워

      버섯발로 뛰어나오던 그 때 그 주모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발고랑내 연신 풍기는 방에서 ‘올해 농사는 풍작’

      이니, ‘과수원 댁 처자가 시집을 간다’ 느니 동무끼리 이야기꽃을 피우며 주고받던 막걸리 한 잔을, 그때의 그 추억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200년 된 회화나무 앞에 있는 삼강주막 전경(좌)과 영화로웠던 옛 삼강나루터 흔적(우)

      이름 그대로 내성천과 낙동강, 금천의 세 강줄기가 한데 어우러져있다 하여 붙여진 삼강. 예로부터 삼강은 한양으로

      가는 길목으로 문경새재를 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었다. 역시나 삼강주막으로 가는 초입에는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떠나는 영남의 선비들이 주막에 들려 목을 축이는 모습과 과거 길에서 내려와 고배의 씁쓸한 잔을 마시는

      선비들의 모습을 담은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또한 지금은 푯말만 남은 삼강나루터는 경남 김해서 올라오는 소금배가

      경북 안동까지 가는 길에 쉬어가는 곳이었다. 그러하기에 삼강주막은 과거객들에게, 삼강나루의 뱃사공들에게, 장사꾼들에게,

      때론 시인묵객들의 허기를 면해주고 잠자리를 제공해주는 짐짓 어머니와 같았던 곳.  

       
      “ 참 불쌍했어. 그 할마이… 매일 밤 툇마루에 앉아서 불 켜진 마을을 내려다보았지. 사람이 그립고, 또 그 정이 그립고 그랬던

      거지. 근데 마을하고 주막 사이에 다리가 생기면서 그게 안 됐던거라. 그 할마이, 3일 밤낮을 울었다안카나. 마음이 마이 아프지

      고거 생각하면…”
       

       

                                                                   철철철 정이 넘치게 따르던 막걸리를 담는 주전자들이 줄지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삼강리 정재윤 이장은 그 당시 유옥연 주모를 회상하면서 눈시울이 붉게 부어올랐다. 꽃다운 나이 18살에 시집온 주모는 남편이

      병으로 잃은 뒤 농사로는 다섯 자식들을 키우기가 힘들어지자 주막을 시작하게 되었다 한다. 처음에는 소금배도 다니고 나룻배로

      오가는 사람들이 많아 벌이가 꽤 괜찮았고, 특히나 장날이면 강 이쪽저쪽에서 오는 배들로 점심 즈음이면 주막의 술 단지가 홀쭉

      해졌다고. 그러다 물길을 가로질러 마을에 삼강교가 놓이기 시작하면서 인적이 끊겼고 더 이상 나루는 제 기능을 하지 못했고

      동시에 주막도 점점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거기다 듬성듬성 찾아오는 손님을 반갑게 맞아주던 팔십 여덟의 나이의 주모가

      2005년 세상을 등지면서 사공들의 애환을 달래주던 마지막 주막은 흙벽이 스러질 듯 페허가 되다시피했다. 그러다 주민들이 주막

      살리기에 나섰고, 이에 예천군에서 문화적 의의를 인정해 민속자료 제304호로 지정되면서 복원이 시작되었다. 
       

       

                                                            옛 모습 그대로인 아궁이(좌)와 새로이 맞은 권태순 주모의 정겨운 모습(우)

      물론 지금 현재 원형 그대로 복원되었지만 그 옛날 삼강주막의 풍치를 오롯이 느낄 수는 없는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주막 툇마루에

      앉아 막걸리 한 사발 마시다 보면 타임머신을 타고 그때의 그 주막으로 돌아간 기분은 맛 볼 수 있다.

      여자가 작아도 아이는 낳는다는 정재윤 이장의 우스갯소리 마냥 16평 남짓되는 주막에는 주막은 주모가 외로운 밤을 보냈을 방, 그 옆으로

      과객들이 발고랑내 풍기며 잠을 잤을 조막만한 방 두 칸과 토끼 굴 같은 부엌 그리고 장정 넷이 앉으면 엉덩이가 가득 찰 마루에 다락까지

      있을 건 다 있었다. 주막의 키 포인트는 단연 부엌. 어디서라도 ‘주모’ 하고 부르면 한달음에 달려올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여기 봐봐, 문을 세어봐. 네 개지? 손님들이 언제라도 불러대면 문만 열면 사방으로 나갈수 있도록 해 놓은거야. 옛날 사람들보면 참 머리가 좋아. 안 그나?”
       

       

                                                 주모가 직접 만든 막걸리는 물론 묵과 두부도 맛있지만 경상도에서만 맛볼수 있는 배추적이 별미

      참말로 좁은 공간에서도 기능적으로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만들어놓은 부엌에 감탄하게 된다. 삼강주막은 새로이 주모도 공모했다.

      주모의 조건은 첫째 삼강리 주민으로 막걸리를 직접 담그는 것은 기본이요, 맛도 좋아야하고, 둘째는 친절해야하며, 셋째는 자리를

      비워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새로이 뽑힌 주모는 위의 세 가지 조건을 당당히 통과한 권태순 할머니. 친절은 당연지사. 나이도 적당

      하고, 무엇보다 막걸리를 맛있게 잘 빚어서 점수를 얻게 되었다 한다. 조만간 1934년 갑술년 홍수에 잠겼던 사공집, 보부상의 여인숙

      까지 지어테마공원으로 만들 예정이라고 한다. 요즈음은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아 바깥에 비닐하우스도 설치했는데 분위기가 나름

      괜찮다. 현대인들의 감각에 맞게 소주도 있고, 맥주도 들여놨다. 허나 뭐니뭐니해도 한국인들이 공감하는 맛은 달짝지근한 막걸리다

      새로운 주모가 가져다주는 막걸리 주전자에도 철철철 정이 넘친다. 특히나 안주로 나오는 배추적은 경상도에서만 맛 볼 수 있는

      별미다. 노란 속배추를 뜯어 밀가루에 묻혀 구워내는 배추적은 달보드래한 맛에 고소한 맛까지 더해진다. 묵이나 두부도 모두 주모가

      직접 만들어 낸 음식이다.  
       

       

                                                                     한잔 술을 벗삼아 이야기꽃을 피우며 옛 추억에 잠기는 주막 안 사람들의 풍경


      뱃사공들의 애환을 달래주던 마지막 주모의 삼강주막. 그리고 서민들의 지친 삶을 어루만져줄 새로이 맞은 주모의 삼강주막. 사실

      주막과 주모는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는 실상 존재하지 않는, 그저 사극에서나 볼 수 있는 흘러간 추억 속의 기억일 뿐이다. 허나

      추억이든 현실이건 간에 삼강주막에는 퍼줘도 퍼줘도 결코 마르지 않는 우리네 인정이 있고, 소금보다 짠 인생이란 안주에 한잔

      술을 벗 삼아 위로하며 살아가던 우리네 삶이 있다. 그래서인지 허허롭거나 힘겨운 날엔 삼강주막이 자연스레 떠올려지나보다.

       

       ◎ 삼강주막 가는 방법

        서울 - 중부내륙고속도로 - 점촌, 함창 ic - 문경시에서 34번 국도 -예천방면 - 산양면 소재지 - 59번 지방도- 풍양방면으로 10분- 삼강교 - 삼강주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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