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녁 경사진 언덕에 네가 없었던들
가을은 얼마나 쓸쓸했으랴
아무도 너를 여왕이라 부르지 않건만
봄의 화려한 동산을 사양하고
이름도 모를 풀 틈에 섞여
외로운 계절을 홀로 지키는
빈들의 색시여
갈꽃보다 부드러운 네 마음 사랑스러워
거친 들녁에 함부로 두고 싶지 않았다
한 아름 고이 안고 돌아와
화병에 너를 옮겨 놓고
거기서 맘대로 자라라 빌었더니...
들에 보던 그 생기 나날이 잃어지고
웃음 거둔 네 얼굴은 수그러져
빛나던 모양은 한 잎 두 잎
병들어 갔다
아침마다 병이 넘는 맑은 물도
들녁에 한 방울 이슬만 못하더냐
너는 끝내 거치른 들녘
정든 흙냄새 속에
맘대로 퍼지고 멋대로 자랐어야 할 것을
뉘우침에 떨리는 미련한 손은
이제 시들고 마른 너를 다시 안고
푸른 하늘 시원한 언덕 아래
묻어 주러 나왔다
들국화야
저기 네 푸른 천장이 있다
여기 네 포근한 갈꽃 방석이 있다
- 들국화/ 노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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