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音樂

Vladimir Vissotski

by 류.. 2007. 7. 25.

 

Vladimir Semyonovich Vysotsky (January 25, 1938 – July 25, 1980) was a Russian singer, poet, theatre and movie actor, and writer. 시적인 노랫말과 날카로운 풍자로 깊은 감동을 던져주는 차스투쉬카의 전통은 현대로 들어서면서 블라디미르 비소츠기, 불라트 오쿠자바 그리고 빅토르 최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포크 가수들에게 커다란 음악적 영감을 주었다. 블라디미르 비소츠키는 이러한 포크 가수들 가운데서 단연 우뚝 솟아 보이는 거대한 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카랑카랑한 쇳소리를 내는 목소리, 피를 토하는 듯한 그의 절규가 예리한 칼날이 되어 폐부를 찌를 때, 고깃덩이에 갇혀 있던 우리 영혼은 파열음을 일으키며 해방된다. 그의 목소리는 짓눌려 신음하는 영혼의 뇌관을 격발시키는 강렬함을 지니고 있다. 칼바람처럼 매섭게 귓전을 때리는 강렬한 목소리는 분열된 의식을 완벽하게 해체시키고 더 이상 허위의식이 들어설 자리를 용납하지 않는다. 1938년 1월 25일 모스크바에서 출생한 비소츠키는 소년시절부터 시를 쓰는 것을 좋아했다. 그는 자신의 생활 속에서 발견했던 삶의 풍경들을 자신의 시에 담아냈다. 부모의 뜻에 따라 기술학교에 진학한 비소츠키는 첫 학기 도중 자신의 인생을 살기로 결정한다. 그는 몇번에 걸쳐 설계도면을 그리는 작업을 하다가 자신이 그린 도면에 잉크병을 부어버리고는 학교를 떠나고 만다. 숱한 어려움 끝에 그의 재능을 알아본 젊은 연출가 유리 루비모프를 만나 연극배우로서 명성을 얻는다. 하지만 그가 소년시절부터 간직해온 시에 대한 열망은 그를 내버려 두지 않았다. 연극학교 시절에 틈틈이 시를 쓰고 노래로 만들어 부르곤 했던 즐거운 작업이 직업배우가 된 뒤에도 계속 이어졌다. 비소츠키는 시를 통해 소비에트 체제의 왜곡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아냈다. 그는 생필품을 사기 위해 길게 늘어선 보통 사람들의 현실과 엘리트 계급의 부당한 특권을 고발했다. 체제비판으로 비칠 수 밖에 없던 그의 시는 애초부터 출판될 수 없는 것이었고, 그는 자신의 메시지를 대중에게 전하기 위해 기타를 집어들었다. 가까운 친구에게 들려준 그의 노래들은 카세트 테이프에 담겨졌고 그 노래를 녹음해두었던 친구는 혼자 듣기에 아깝다는 생각에 테이프를 복사해서 주위 사람들에게 돌리기 시작하면서 비소츠키는 '얼굴 없는 가수' 로서 대중들의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비소츠키의 전설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비소츠키의 노래와 시는 단순히 '저항' 이나 '비판' 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다. 그의 노래와 시는 대중들에게 현실에 낙담하지 않고 성실하게 일하고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는 힘과 감동을 불어넣은 '예술 혼' 을 담고 있었다. 러시아인들에게 '시인' 이란 '십자가를 지도록 신이 선택한 사람' 을 의미한다. 비소츠키는 신이 부여한 이러한 시인의 책무를 다하기 위해 고뇌했다. 그래서 <마이크 앞에선 가수> 에서 "내 노래의 멜로디는 음계의 단순함보다도 더 단순하다. 하지만 내가 진실의 어조를 잃은 순간, 마이크는 채찍이 되어 내 얼굴에 흉터를 남긴다" 고 노래한다. 그러나 어느 인터뷰에서 "나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시간" 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시간은 그를 기다려 주지 않았다. 그가 <야생마> 에서 "말아, 부탁하자. 조금만 그 걸음을 멈출 수 없겠니, 마지막 피난처에 도달할 때까지 내 최후의 날을 늦춰다오" 라고 노래했듯이 '일을 마칠 시간도 없이 닥쳐올 운명의 시간' 은 그에게 늘 두려운 존재였다. 1980년 7월 27일 심장마비로 세상을 갑자기 떠났던 운명의 그 시간까지 공식적인 시집 한 권, 음반 한 장을 발표하지 못한 그이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자유를 갈망했던 위대한 음유시인으로 살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