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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나란히 함께 간다는 것은...

by 류.. 2005. 9. 8.

 


철길


김정환


철길이 철길인 것은
만날 수 없음이
당장은, 이리도 끈질기다는 뜻이다.
단단한 무쇳덩어리가 이만큼 견뎌오도록
비는 항상 촉촉히 내려
철길의 들끓어오름을 적셔 주었다.
무너져내리지 못하고
철길이 철길로 버텨온 것은
그 위를 밟고 지나간 사람들의
희망이, 그만큼 어깨를 짓누르는
답답한 것이었다는 뜻이다.
철길이 나서, 사람들이 어디론가 찾아나서기 시작한
것은 아니다.
내리깔려진 버팀목으로, 양편으로 갈라져
남해안까지, 휴전선까지 달려가는 철길은
다시 끼리끼리 갈라져
한강교를 건너면서
인천방면으로, 그리고 수원 방면으로 떠난다.
아직 플랫폼에 머문 내 발길 앞에서
철길은 희망이 항상 그랬던 것처럼
끈질기고, 길고
거무튀튀하다.
철길이 철길은 것은
길고 긴 먼 날 후 어드메쯤에서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우리가 아직 내팽개치지 못했다는 뜻이다.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길이 이토록 머나먼 것은
그 이전의, 떠남이
그토록 절실했다는 뜻이다.
만남은 길보다 먼저 준비되고 있었다.
아직 떠나지 못한 내 발목에까지 다가와
어느새 철길은
가슴에 여러 갈래의 채찍 자욱이 된다.

 

 

 

 

 

      나란히 함께 간다는 것은...   
                     
          
      길은 혼자서 가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멀고 험한 길일수록 둘이서 함께 가야 한다는 뜻이다.
      철길은 왜 나란히 가는가?
      함께 길을 가게 될 때에는
      대등하고 평등한 관계를 늘 유지해야 한다는 뜻이다.
      토닥토닥 다투지 말고,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말고,
      높낮이를 따지지 말고 가라는 뜻이다.
      철길은 왜 서로 닿지 못하는 거리를 두면서 가는가?
      사랑한다는 것은 둘이 만나 하나가 되는 것이지만,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둘 사이에 알맞은 거리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서로 등을 돌린 뒤에 생긴 모난 거리가 아니라,
      서로 그리워하는 둥근 거리 말이다.
      철길을 따라가 보라.
      철길은 절대로 90도 각도로 방향을 꺾지 않는다.
      앞과 뒤, 왼쪽과 오른쪽을 다 둘러본 뒤에 천천히,
      둥글게, 커다랗게 원을 그리며 커브를 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랑도 그렇게 철길을 닮아가라.

      ...안도현의 아침엽서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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