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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길, 낭만에 대하여

by 류.. 2005. 9. 7.

 

 

           



          우시장(牛市場)에서 극장까지 가는 길은

          영화처럼 슬펐어요


          새벽이면 안개 덜 걷힌 길을

          고삐 잡힌 소들 걸어와

          입 꾹 다물고 외지로 나갈 트럭만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 길,

          영물이라 제 운명을 안다더니만

          철든 녀석들이 흘린 퉁방울 같은 눈알들

          툭툭 발에 채이는 신작로엔

          그래서 늘 자갈투성이었죠


          용각산 같은 먼지가 노을에 묻힐 무렵

          극장 간판엔 십자성 반짝이고

          선술집에서 소변보러 나온 술꾼들이

          휘청이며 어둠 속으로 들어설 때면

          애수에 젖은 문희가 오늘은 또 누구를 기다리는지,


          산다는 것은 잠깐이어서

          철없이 자갈길 걸으며 걷어찬 적도 많고

          문희처럼 사랑하고 실연도 하지만

          그래요, 유행가 가사처럼

          이제와 새삼 낭만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은

          재개발로 곧 없어진다는 우시장

          그 길 한 켠에

          아주 가끔씩 올려지는 추억의 명화가

          지금 상영중이거든요.

          호호 여주인공요? 문희는 아니에요.

           

           

          고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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