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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으로 가고 싶다

by 류.. 2005. 4. 9.

 

 

 

 

   사람들은 늘 바다로 떠날 일을 꿈꾸지만
   나는 아무래도 강으로 가야겠다
   가 없이 넓고 크고 자유로운 세계에 대한 꿈을
   버린 것은 아니지만 작고 따뜻한 물소리에서
   다시 출발해야 할 것 같다

   해일이 되어 가까운 마을부터 휩쓸어 버리거나
   세상을 차갑고 거대한 물로 덮어버린 뒤
   물보라를 날리며 배 한척을 저어나가는 날이
   한번쯤 있었으면 하지만
   너무 크고 넓어서 많은 것을 가졌어도
   아무 것도 손에 쥐지 못한 것처럼 공허한
   바다가 아니라 쏘가리 치리 동자개 몇 마리만으로도
   넉넉할 수 있는 강으로 가고 싶다

   급하게 달려가는 사나운 물살이 아니라
   여유있게 흐르면서도 온 들을 다 적시며 가는 물줄기와
   물살에 유연하게 다듬어졌어도 속으론 참 단단한
   자갈밭을 지나 천천히 걸어오고 싶다
   욕심을 버려서 편안한 물빛을 따라 흐르고 싶다

   너무 많은 갈매기 가마우지떼가 한꺼번에 내려앉고
   한꺼번에 날아오르는 바다가 아니라
   내게 와 쉬고 싶은 몇마리 새들과도
   얼마든지 외롭지 않을 강으로 가고 싶다

   은백색 물고기떼를 거느려 남지나해에서
   동해까지 거슬러오르는 힘찬 유영이
   아름다운 것도 알지만
   할 수만 있다면 한적한 강마을로 돌아가
   외로워서 여유롭고, 평화로워서 쓸쓸한 집 한채 짓고
   맑고 때묻지 않은 청년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 강 마을에도 어린 시절부터 내게 길이 되어주던
   별이 머리 위에 뜨고 어디에도 얽메이지 않는
   호젓한 바람 불어오리니 아무래도
   나는 다시 강으로 가야겠다


  도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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