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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우울

by 류.. 2004. 11. 6.


파리의 거리는 온종일 비가 내리고 노트르담으로 가는 지하철 통로 저편엔 떠돌이 여가수가 자신의 꿈처럼 낡아버린 기타를 튕기며 가을비 젖은 목청으로 샹송을 부르고 있다 그녀의 모자 속에 떨어지는 은빛 동전 소리를 나는 아까부터 듣고 있었다 찰랑, 이며 일어서는 영혼의 거지들 내 노래는 언제 지상에 있었던가? 늙은 여가수 당신은 물론 알고 있을 것이다 먼 곳을 떠돌다 온 내 노래도 늘상 누군가의 원조를 필요로 했을 터 나는 노래가 무언가를 생산할 수 있으리라 생각진 않았다. 다만 보들레르가 그랬듯 육체의 완전한 廢家 속에서 혹은 有用한 삶이 던지는 냉소와 저주를 은화처럼 주워들며 세상의 도시를 부유하는 자들의 온갖 소음을 나의 음률로 만들고 싶었다 군중의 소음이 곧 음률인 노래 내 노래의 후견인인 도시 역시 그걸 원했다 떠돌이 여가수여, 그것이 내가 아는 전부이다 가을비를 맞는 베짱이의 고통이여, 그게 내가 느끼는 전부이다 寺院으로 갈 것인가, 도시로 갈 것인가 그러나 애석하게도 나는 아직 여기에 있다 침묵과, 도시를 흐르는 인파의 소음 사이 바로 그곳에 나는 예감한다 침묵과 소음 사이의 엉거주춤한 그 무엇 그 어색한 서성임이 행로도 귀로도 아닌 이 기나긴 지하 통로가 내 노래의 운명임을 불어오는 검은 바람아, 아마도 그럴 것이다

 

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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