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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라는 세상

by 류.. 2020. 6. 1.

 

 

이 세상 살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가에 꽃모종을 심는 일이다

이름 없는 꽃들이 길가에 피어나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 꽃을 제 마음대로 이름 지어 부르게 하는 일이다

아무에게도 이름 불려지지 않은 꽃이 혼자 눈시울 붉히면

발자국 소리를 죽이고 그 꽃에 다가가

시처럼 따뜻한 이름을 그 꽃에 달아주는 일이다

부리가 하얀 새가 와서 시의 이름을 단 꽃을 물고 하늘을 날아가면

그 새가 가는 쪽의 마을을 오래오래 바라보는 일이다

그러면 그 마을도 꽃처럼 예쁜 이름을 처음으로 달게 되겠지

 

그러고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남아 있다면, 그것은

이미 꽃이 된 사람의 마음을 시로 읽는 일이다

마을마다 살구꽃 같은 등불 오르고

식구들이 저녁 상가에 모여 앉아 꽃물 든 손으로 수저를 들 때

식구들의 이마에 환한 꽃빛이 비치는 것을 바라보는 일이다

어둠이 목화송이처럼 내려와 꽃들이 잎을 포개면

그날 밤 갓 시집온 신부는 꽃처럼 아름다운 첫 아일 가질 것이다

그러면 나 혼자 베갯모를 베고

그 소문을 화신처럼 듣는 일이다

 

 

 

이기철

 

 

 

"The Old House" - Phil Coul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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