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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국 계단에 앉아..

by 류.. 2018. 3. 25.

 

 

 


화사한 봄날 
오래된 통장 하나를 정리하기 위해 
우체국에 갔다 언제부턴가 
 우체국이 그리운 사람에게 
편지를 부치러 가는 곳이 아니라 
잔고가 얼마나 남았는지를 
확인하러 가는 곳이 되었을까 
낡은 통장을 창구에 들이밀다가 
나는 문득, 삶이 쓸쓸해져서 
우체국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 
누런 포장지에 싸인 소포와 항공편지를 
어디론가 부치고 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다. 
그 동안 받기만 하여서 
부치는 것을 잊어버린 먼 그리움에 목이 말라 
수첩을 꺼내 주소를 찾아보지만 
내 낡은 수첩은 어느새 
많은 이름들을 지우고 있었다 
팬지꽃이 노랗게 웃고 있는 
우체국 계단에 기대서서 
희미해진 이름들을 떠올린다 
미국에도 있고 호주에도 있는, 
몇 장의 엽서를 손에 쥔 나는 
살아있는 한 잊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이름들을 되찾은 반가움으로 
우체국 계단을 내려선다 
봄바람이 아니면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을 
내 기억의 소중한 이름들을... 
김인자

이문세 - 사랑이 지나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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