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을 가기 전날 저녁에는
손톱과 발톱을 깎는다. 두꺼운
장갑과 등산용 양말로 보호하긴 하지만
손발톱이 말끔하지 않으면 자칫 꺾이거나
부러지는 부상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른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뜨거운 물로
샤워한다. 어쨌거나 산 앞에 섰을 때는
깨끗하고 싶다. 조금은 착하고
순진하고 싶다.
- 김별아의《괜찮다, 우리는 꽃필 수 있다》중에서 -
사실 어린 시절의 난, 산을 오르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다.
산을 너무나 좋아하셔서 전국의 명산은 물론, 해외에서도 그곳에 있는 산을 정복해야만
여행의 즐거움을 느끼셨던 아버지를 둔 탓에 우리 가족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언제 어디서든 산을 오르곤 했다.
아예 여행지를 산이 있는 곳 혹은 산이 가까운 곳으로 정해야 하기도 했으니까.
어린 시절의 난, 귀찮고 힘들다며 툴툴거리기 바빴지만
성인이 되고 난 지금, 아버지께서 왜 그토록 고된 산행에 매료되셨는지 그 이유를 어렴풋이 알게 됐다.
내가 다녀온 산행은 백두대간 완주도 아닌 몇 번의 짧은 산행에 불과했지만,
산이라는 거대한 자연을 오를 때마다 자신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하는 겸손의 미덕을 배우고
산을 오르는 동안 포기하고 싶은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함으로써 인내와 체력을 쌓게 하고
가파르고 힘든 길을 올라온 만큼, 더 넓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할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아버지의 산행을 쫓은 최근에서야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직접 산을 오르는 수고를 하지 않더라도
김별아의 맛깔스런 문장을 쫓아 그녀와 함께 백두대간을 오르내리는 동안,
작가의 예민한 촉수로 끌어낸 아름다운 삶의 성찰들을 마주하노라면 내 지친 마음마저 치유되는 듯 하다.
사실, 산행 에세이라 했을 때 산을 타는 이들만이 공감할 수 있는 그들만의 책은 아닐까 조금 염려했었다.
난 그들만큼 산에 오르지도 않았는데 내가 제대로 공감할 수 있을까 하는 조바심도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그건 정말 기우에 불과했다.
이 책은 산을 좋아하는 이에겐 더 깊은 공감을, 산을 꺼려했던 이에겐
한 번쯤 나만의 산행에 도전해보고 싶도록 만드는 따뜻한 위안과 치유의 효과를 발휘한다.
작가의 발길을 따라 산에 오르다보면, 어느새 그녀처럼 좀 더 성숙해지고
내 삶을 더 사랑하게 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으리란 희망과 함께 말이다.
어쩜 우리는 삶이라는 커다란 산을 향해 끊임 없이 도전해야하는 존재가 아니던가.
삶이 퍽퍽하다고 느껴지는 순간, 그녀의 문장을 따라 산에 올라보자.
지금의 내 삶이 더없이 소중하고 아름다워 보이게 될 테니.
글 중간 중간 눈을 즐겁게 하는 따뜻한 느낌의 삽화들을 보는 재미는 물론 덤이다.
그녀의 산행을 따라 삶을 꽃 피우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을 꼭 권하고 싶다.(펀글)
♬ Jeanette Alexander - Common Gr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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