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아무 것도 아니었지
순식간에 불타는 장작이 되고
네 몸은 흰 연기로 흩어지리라
나도 아무 것도 아니었지
일회용 건전지 버려지듯 쉽게 버려지고
마음만 지상에 남아 돌멩이로 구르리라
나는 아무 것도 아니라도 괜찮지
옷에서 떨어진 단추라도 괜찮고
아파트 풀밭에서 피어난 도라지라도 괜찮지
나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의 힘을 안다
그 얇은 한지의 아름다움을
그 가는 거미줄의 힘을
그 가벼운 눈물의 무거움을
아무 것도 아닌 것의 의미를 찾아가면
아무 것도 아닌 슬픔이 더 깊은 의미를 만들고
더 깊게 지상에 뿌리를 박으리라
내가 아무 것도 아니라고 느낄 때
비로소 아무 것도 아닌 것에서
무엇이든 다시 시작하리라
신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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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끝난 뒤에
기억한다는 것은 너무 늦다
모든 것을 시작하기도 전에
뉘우친다는 것은 너무 빠르다
길을 가는 중에
벌써 도착하고 있으며
다시 출발하고 있는 것이니
두려워한다는 것은
때로 비겁한 일이다
그러므로 "살아서 즐거웠다" 고
그리고 모든 것이 끝났을 무렵엔
"다 살아서 후련하다" 고
마침내 떠나가는 순간엔
"아직도 삶이 궁금하다" 고
말해야겠다
내 살아갈 날들 앞에서
-살아갈 날들을 위한 비문/차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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