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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누구나 가슴 속에는

by 류.. 2007. 11. 30.

 

 

누구나 가슴속에는 한줌 바람이 있고 작은 불씨가 있고 흐린 거울이 있고 흔들리는 꽃이 있고 반짝이는 별과 하얀 오솔길, 잊혀지지 않는 소풍과 첫눈이 내리던 운동장이 있고 빛바랜 사진 한 두장과 희미해진 이름과 가물가물한 전화번호가 있다.


누구나 가슴속에는 강물이 흐르고 안개 낀 가로수 길과 가로등이 켜지는 다리가 있고 우산을 쓰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과 흐린 물웅덩이가 있고 물속에 가라앉은 빛나는 동전이 있고 길모퉁이 구멍가게와 작은 평상이 있고 도마소리 찌개냄새 자욱한 골목길과 오래 된 철대문과 대답없는 초인종, 비에 젖은 우편함과 되돌아온 편지가 있다.

누구나 가슴속에는 낡은 책상 서랍이 있고 지우개 달린 몽당연필과 잃어버린 구슬과 쓰다만 편지, 지우지 못한 낙서, 들켜버린 일기장이 있고, 망설이던 고백과 허망한 맹세, 지키지 못한 약속이 있고, 크지 않은 여행가방과 돌아가고 싶지 않던 여행과 젖은 우산과 잃어버린 장갑이 있고,쓰러져 가는 눈사람과 사라진 무지개와 별똥별이 있고 허물어진 모래성, 떠내려간 종이배, 날아간 파랑새가 있고 멈추지 않을 것 같던 바람, 아물 것 같지 않던 상처, 돌아오지 않는 친구가 있다.

누구나 가슴속에는 나부끼는 깃발이 있고 커다란 바위가 있고 드높은 나팔소리와 아련한 북소리와 아직도 터지지 않은 조그만 폭탄이 있고 한번도 쓴 적이 없는 녹슨 비수가 있고 나도 모르게 새어 나온 한숨과 숨기지 못한 눈물과 맴도는 회상, 돌아가고 싶은 미련, 산맥같은 그리움, 그리고 침묵, 한번도 입 밖으로 불러보지 못한 이름이 있다.

누구나 가슴속에는 한 그루 나무가 자라고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고요한 저녁마다 등불을 밝히는 작은 窓과 아담한 호숫가 오두막이 있고, 징검다리와 작은 배와 낚싯대와 소나기, 손때 묻은 나무의자와 화분 몇 개와 풀밭, 새소리 요란한 눈부신 아침이 있고, 작은 연못과 흔들리는 그물침대와 아이들 웃음소리가 있고, 하모니카와 삐걱거리는 낡은 자전거와 밀짚모자, 저문 철교를 건너는 기차소리와 모닥불 타는 소리와 옛날에 부르던 노래가 있다.

누구나 가슴속에는 푸른 바다가 있다. 누구는 말을 하고 누구는 말을 하지 않았을 뿐, 누구는 일찍 알았고 누구는 늦게 알았을 뿐, 누구는 지금 바다를 보고 있고 누구는 잠깐 고개를 숙였고 누구는 바다를 잠시 잊었을 뿐, 누구나 가슴속에는 때 묻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는, 아득한 파도소리에 햇살이 눈부신, 푸른 바다가 있다. - 글. 오병욱(畵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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