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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버렸다와 버려졌다 사이.....

by 류.. 2007. 10. 4.

        


버렸다와 버려졌다 사이
                              


1
   버렸다와 버려졌다는 같은 의미라는 것에 동의해야 한다.
   내가 돌 하나를 강물에 버렸을 때
   돌이 일으킨 파문이 사라지기 전 깨달은 것은
   돌이 지겨운 나를 버리고 떠났다는 것.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이 버렸다와 버려졌다를 연결할지 모르지만
   내가 버린 것이 결국 나를 버리고 떠났음을 아는 것은 금방이다.


   2
   이 노선이냐 저 노선이냐 따지며 귀로에 섰던 날, 나를 버리고 떠나는 자들의 발소리가
   쓸쓸할 때 내 곁에 가장 오래 머물렀던 자가 가장 큰 배신자임을 알았다. 천천히 지나가는
   세월의 바퀴가 크고 선명한 자국을 남긴다는 것을, 내 곁에 가장 오래 머물렀던 이름이
   가장 큰 상처를 남긴다는 것을, 내가 혁명의 노선을 버렸을 때 혁명은 나를 도리어 버렸다.
   술병이 쓰러지고 난잡함으로 자학하던 가을 모퉁이,  실루엣으로 처리되던 체 게바라,
   내게 종교였던 그는 나를 버리고 한 시 방향으로 떠나갔다.


   3
   데드라인이 쳐져 있는 거리,  죽음을 각오한 자에게는 무서울 게 없다는 말을 하면서도
   몸은  뒷걸음치고 있었다.  삶을 알아버렸으므로  실밥 터진 바지를 기워서 입으며, 
   비굴로 연명하면서 독한 사랑에 중독되어 나를 잊으려 했다. 내가 버린 이름이  결국
   나를 버리던 날이었다.  헤어지자며 자꾸 매달려야 하는 것이 삶이라고 알아버린 날.
   나는 오독 인 줄 알면서 내 식으로 흐린 거리를 읽었다.
   내 방식대로 이별을 만들고 내 방식대로 눈물을 만들었다.


   4
   살아남은 자에게 결국 슬픔이 없을 거라 면서도 거울 속의 살아남은 내 모습에 자꾸 침을
   뱉던 것은 슬픔이 아니라 내가 내게 보내는 연민이었을까. 살아남기 위해 수없이 등 떠밀어버린
   그 누군가는 이제 희미한 별로 떠오르는데, 살아남은 나는 방충망을 뚫고 잠입하는 여름밤의
   어둠 같다. 가장 아픈 노래로 물푸레나무 잎이나 흔들러 간다.


   5
   이제 버렸다와 버려졌다 를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내가 남긴 발자국 소리여. 결국 나를 남기고 사라지는 발자국 소리여.
   내가 멀리한 이름이여. 도리어 나를 멀리하며 멀어지는 이름이여.
   내가 구부려 만든 이별이여. 나를 더 구부려놓고 멀어져 가는 세상의 모든 이별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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