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音樂

광주사람, 음악인 한보리

by 류.. 2006. 8. 13.


“이 땅에서 음악을 한지 30여년이 넘었는데도 나를 만나면 사람들이 요즘 그림은 잘되십니까? 라고 해요. 길게 묶은 내 머리를 보고 화가라고 지레 짐작하는거죠..,“

그랬다, 내가 보기에도 그는 가수나 뮤지션으로 보이는게 아니라 깊은 산에서 수도하는 명상가나 중견의 화가처럼 보이니까 말이다. 처음 그를 보았을때 난 그가 음악을 하는 사람일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외형을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버릇이 다른 이에 비해 그다지 없던 나에게도 그를 보면서 선입견이 들었나 보다. 난 그가 그냥 우리 일상에서 보기 힘든 부류 정도로만 생각했다.

삶은 우리가 예견하기 힘든 방향으로 흐르는 것 같다. 그를 처음 봤을때 다시는 그를 보기 힘들거란 생각을 했는데 최근엔 그의 얼굴을 일주일에 최소 두세번은 볼수 있으니 말이다. 그와 함께 한 건물에서 생활하는 우연을 잡을거란 생각을 어찌 했겠는가. 어찌됐든 그를 거의 매일 본다는건 정말 즐거운 일이 아닐수 없다. 가수 한보리, 우리는 그를 이렇게 부른다. 그렇지만 난 그에게 가수라는 타이틀을 붙이지 않기로 했다. 그는 그저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아니다.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것 뿐만 아니라 자신의 노래를 만들어 가면서 겪는 처절한 몸부림을 가까운 곳에서 생생히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순히 그에게 가수라는 타이틀을 붙인다는 것은 웬지 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난 그를 음악인이라고 생각한다. 일상에서 부르는 호칭은 선배니 형이니 하는 것들이지만 그를 진정으로 음악인으로 생각하고픈 내 작은 욕심이다.

광주사람 음악인 한보리는 이 땅에서 음악을 한지가 30년이 넘었다고 내게 고백한다. 그러나 난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정말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순간 내 머릿속을 오버랩처럼 겹치며 스쳐가는 얼굴들..., 박문옥, 김원중, 배창희, 정용주, 박종화, 류영대..., 언제 내가 그들의 이름들을 신나게 불러 주었을까. 언제 그들의 노래를 음미하며 당당하게 한소절을 불러 제꼈을까. 한보리의 말은 내 가슴에 파편처럼 와서 박힌다. 나는 비로소 그를 만나 진정 부끄러웠다. 부끄럽다는 뜻은 그들의 작업과 그들의 노래를 모르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전적으로 무관심과 지적허영의 소치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한보리의 말보다 더욱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그의 음악을 들었을 때이다. 고백하건대 난 그의 음악을 과거에 단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러나 그의 음악을 들었을때 그와 나의 음악적 교류가 과거에 전무한 것이 오히려 다행이었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보리의 음악은 기존의 한국의 포크가수들과는 전혀 다른 류의 음악을 보여주고 있다. 한 뮤지션의, 한 인간의 처절한 노작들을 단 한마디의 말로 표현하다는 것이 그 얼마나 진부하고 용렬한 일인지 누구보다도 내 자신이 잘 아는 일이지만 한보리의 그것은 독특하면서도 마치 음악으로 표현되는 치열한 자화상에 다름아니다. 사실 이땅의 어떤 유명뮤지션이라도 한보리의 그것만큼 음악적 완성도나 유명세에 뒤질 이유가 없겠지만 그러나 한보리의 그것만큼 자신이 뿌리박고 사는 곳에 대한 깊은 천착, 삶과 이상 사이에서의 통렬한 자기고백은 난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러면서도 그의 음악은 결코 결연하거나 비장하지도 않고 유유자적하다. 마치 도가의 노장사상의 숲위를 맨발로 아슬아슬하게 걷는 긴장감을 유발시킨다. 때로는 따분하다고 할 정도의 그의 음악은 그가 험난하게 살아왔던 그의 삶과 궤를 같이한다. 산전수전 공중전 덧붙여 화생방전까지 치른 백전노장의 여유와 관조를 겸비했다고 할까. 목구멍에 풀칠하려고 택시 운전을 했던 때가 그래도 가족에게 가장 당당했다고 말하는 그의 말처럼 말이다. 하지만 정말 빌어먹게도 내가 정말 그에게 매료된 것은 눈물짜게 만드는 그의 라이프 스토리가 아니다. 골방같은 콘크리트 구조물 한 귀퉁이에서 매일매일 머릴 쥐어짜며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내는 그의 작업정신과, 그런 치열한 작업과 맥을 같이하는 그의 삶속에서 그를 진정으로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음악도 좋지만 그의 음악을 사랑하는 정신과 태도를 더욱 사랑한다. 이건 그냥 알고 지내는 이에 대한 단순한 사탕발림이 아니다.

그의 미공개 노작들, 혹은 유명하지 않아 그의 주변에서 ‘불굴의 걸작’ 이라고 반놀림 받는 이름없고 별볼일 없는 그의 음악들은 결코 화려하지 않고 결코 돈냄새 나지 않으며 그리고 또한 결코 타협적이지 않는 그의 앨범속에서 또한 큰 소리 치지 않고 조용히 빛이 난다. 조용히 눈을 감고 그의 음악을 들어보자. 듣기 전에 제목들 하나하나가 읖조리는 맛깔스러움에 치를 떨게 만든다. ‘술병 속의 바다’, ‘미안해 아들아’, ‘할머니 생각-딸기 한 근’, ‘내 아내는 우동을 좋아해’...,

난 그의 음악을 본격적으로 접하기 전에 그가 단순히 포크류의 음악을 하는 딴따라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의 음악에는 단순히 포크라고만 할수 없는 그 무엇이 들어있었다.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그 독특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송창식같은 것도 아닌 것이, 요절해서 더욱 그 비장함이 돋보였던 김정호의 그것도 아니고, 낭만주의 포크의 대명사인 박학기의 부드러움과도 일맥상통하지 않는 한보리만의 그 무엇이 그의 음악에 내재한다. 포크이면서도 포크가 아니고 때론 록과 포크의 접점에서, 블루스와 포크의 기이한 동거에서 그의 음악은 춤을 춘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불쾌하지 않은 이종변형이다. 단점이라면 이런 모든 변형된 요소들을 너무 적절하게 안배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아직 손볼대가 많다. 굳이 표현하자면 너무 소박하고 자신의 삶들이 너무 녹아 있어 듣는 이로 하여금 모호한 편안함을 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선입견을 가지지 않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이런 불쾌함쯤은 참을 수 있을성 싶다.

최근 한보리는 그가 믿고 사랑하는 동료들과 함게 매월 정기 콘서트를 진행중이다. 꼬두메 포엠코서트가 바로 그것이다. 이 작업에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다. 시인들과 영상작업하는 분들, 애니메이션 작가들, 각층의 스탭들이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뤄 무대를 이끌어 간다. 형식과 장르의 벽을 뛰어 넘어 대중과의 소통을 지향하는 콘서트는 바로 한보리가 여태 살아왔던 그의 삶과 닮아 있다. 그래서 그는 하루하루 버거운 무게감에 짓눌려도 마음만은 즐겁다고 한다. 우리가 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일 것이다.

난 수많은 그의 음악 속에서 우리의 일상과 욕망사이에 조화로운 타협을 찾는 천개의 눈을 발견한다. 그의 음악은 천개의 눈을 가졌다. 그 눈들은 음악을 들을때 뿐 만 아니라 정적과 침묵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그런 조용한 울림을 지닌다. 마치 봉덕사 종이나 화엄사 종같은 여운처럼 말이다. 그것은 결코 신비하지 않는, 현실속에서 존재하는 기꺼이 우리 주변을 휘도는 영혼과 순수의  합창이다. 어쨌든 난 그의 음악이 참 좋다. 그리고 난 그를 만나 진정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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