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말리의 음악은 방황하는 이들의 국가가 되었고, 그의 가사에 담겨진 정신은 현재까지 살아있다.
그는 진정한 레게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했다.
1945년 자메이카에서 태어난 혼혈의 섬소년 밥은 세계적인 지위를 얻은 유일한 레게 스타이다.
그는 17세에 처음으로 레코딩했고, 19세에 원래는 The Wailing Rudeboys로 불리었던
The Wailers와 함께 활동하기 시작했다.
마리화나 소지혐의로 미국 교도소에 투옥되었던, 강력한 rastafarian 말리의 노래가사는
그의 종교관과 정치관에서 비롯되었다.
그의 유명한 "Rastaman Vibrations" 앨범에 수록된 "War"의 가사는 Haile Selassie의 연설에서
나온 것이다.
자메이카의 영웅이 되고나서 말리는 1975년 영국과 미국 투어를 성공적으로 마친 후 자신이
어느새 세계적으로 알려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노랫말에서 나타난 그의 사상으로 인해 정작 고향에서는 폭력과 불안 등 정치적인 긴장감에
둘러싸여 편안히 살기 어렵게 되었고, 1976년에는 정체불명의 총잡이들에게 저격을 당하기도 했다.
저격을 당한 뒤 밥말리는 살아났지만, 이를 계기로 자신의 기반만은 항상 자메이카에 남겨두면서
열정적인 투사였으며 레게를 세계에 알렸던 이 사나이는 1981년 5월 11일 뇌암으로 숨졌다.
그러나 그의 전설은 현재 레게를 연주하고 듣는 모든 이들에게 살아있다...
이런 투사의 이미지나 레게음악의 전설로서 말고도 밥 말리는 또다른 이유로 각광을 받고 있는데,,,,,
그게 바로 요즘 우리나라에서 흔히 말하는 레게머리라는 이름의 드레드락(Dreadlock)이다.
이 머리는 원래 '아프리카민족주의'라는 자신의 종교적,정치적 신념을 나타내기 위해
행해졌고,지금도 아프리카를 정신적 지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이 앞다투어 이 머리를 하고 있다.
라스타파리어니즘(rastafarianism)이라 불리는 이 아프리카 민족주의 운동은 아프리카
노예후손들의 백인에 대한 강한 저항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 가자는 운동이며,
이 운동은 후에 밥 말리의 음악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머리를 길러라" 라고 종용했으며,이에 자극받은 사람들이 자신의 머리에 드레드락을 얹게 된다.
어찌보면 드레드락은 인공적인 개념의 미용실에서 볶기가 아니라 때가 꼬질꼬질하고 기름기가
하여튼 후에는 백인들도 흑인음악의 영향을 받으면서 이 드레드락을 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이제는 미국은 둘째치고 우리나라 대학로에 나가도 이 드레드락을 한 사람들을 볼수가 있다.
물론 이들이 드레드락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고 거창한 의미부여를 위해 드레드락을 하는건
아닐 것이다 패션에 따라 그냥 그렇게 하는 사람이 오히려 더 많은게 사실이다.
이런 드레드락의 패션화는 1980년대부터 유행하기 시작했으며,90년대가 되면서 백인들까지
스케이트보드와 스노보드를 타면서 흑인처럼 랩을 부르며 드레드락을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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