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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레꽃(표충사) "찔레꽃" 이라는 문패가 소탈스런 삽짝문 돌담 너머 대추가 익어 가는 '찔레꽃' 밀양 표충사 가는 길에 자리잡은 국수집 그집에 들어섰을 때... 사람은 없고 낯선 사람도 반겨주는 강아지 한 마리와 툇마루 아래에서 졸고 있는 새끼 고양이가 빈집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마당엔 주렁주렁 열매를 안고 있는 대추나무 가지들이 땅을 항해 흐르듯 한껏 휘어져 있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무게만큼 머지않아 이 가을도 서서히 익어서 휘어지겠지요 주인이 없어 국수맛은 볼 수 없었지만 소박한 나무탁자 위에 놓인 투박한 잔을 보면서 이제 막 물들어 가는 대추를 접시 그득 담아 놓고 모차르트나 라흐마니노프가 아닌 장사익의 노래 한 소절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쾌한 바람이 살 속을 파고드는, 멀리 있는 친구가 .. 2004. 11. 1.
여행 전야에... 길을 나서는 일은 늘 그렇듯 설레임반 걱정반입니다 내일 떠나면 나는 얼마나 많은 길을 헤매고 또 헤매야 집으로 되돌아오는 길을 찾을 수 있을까요? 거실에 펼쳐놓은 배낭을 보면서 푸른 하늘을 머리에 이고 마냥 걷는 상상을 합니다 막상 집을 벗어나면 씩씩해지지만 아직 몸은 이곳.. 2004. 11. 1.
비..이제 그만 지루한 장마.. 비...오늘도 어제도 그제도 내일도...비 올장마는 매우 산발적이다 기습적이며 격동적이고 도발적이다 온종일 오는게 아니라 한동안 퍼부었다가 잠시 조용해지고 잠시 빛이 나는듯 하다가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다 어느 해보다 서럽게 온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다 하루종일 구질하게 내리는 것도 아니고 가슴앓이처럼 기복이 심하다 잊을만하면 도지는 고질병처럼... 굵은 빗발이 퍼붓는 창밖을 망연히 바라보면 삼류영화의 주인공이 된듯 어쩌면 그리 처량해질까.. 아릿한 비냄새, 맨땅에 포르라니 번져가는 이끼, 마르지 않는 눅눅한 옷냄새.. 외출시 마다 없어져버린 우산들..... 아파트 화단 큰 나무 아래로 비를 피하려 왔다가 마주치자 나보다 더 놀래서 달아나던 도둑 고양이의 서늘한 눈동자.. 보랏빛으로 날이.. 2004. 11. 1.
사랑하다 죽어라 어떤 시인이 노래했던가?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고 또 다른 시인은 그랬던가?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전자의 말은 슬픔이 배어있지만 후자의 말은 축복과 저주를 담고 있다 사랑은 언제나 무한정 넘치게 퍼담을 수 있는 물이 아닌 게 분명하다 목이 타는 이유는 그뿐이 아니다 어쩌면 철저하게 비껴 가는 퍼즐게임.. 타인의 것에 침을 삼키며 광분하는 것도 사랑은 저만치 물러나 있어서 잡힐 듯 하지만 종내 잡을 수 없는 그 무엇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어제 TV로 이산가족들이 수십년만의 상봉후 헤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평생을 붙어서 아옹다옹 티격태격하는 보통의 부부를 생각했다 아니 그조차도 지키지 못하고 혼자가 된 이들을..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나는 적을 만들지 않았지만 내 의지와.. 2004. 11. 1.
옷좀 입자 반가운 친구가 찾아와 집근처 묵집을 찾았다 묵 한그릇과 닭도리탕을 주문하고.. 옥수수 동동주를 한잔씩 들이키는데.. 우리가 앉은 건너편 테이블에 시골에서 금방 올라오신 듯한 나이드신 어른 한분과 젊은 부부 그리고 두 어린아이들이 점심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식사를 하는 동안 시아버지인듯한.. 그분은 도대체 안절부절 시선을 어디에다 두어야할 지 매우 난감해 하시는 눈치다 이유인즉.. 바로 앞자리에 앉은 신세대 며느리의 옷차림 때문인데.. 간신히 어깨에 걸친 가는 끈에 매달린 꽃무늬 원피스가 가슴은 물론 상체를 거의 드러내고 있었는데 민망해 하시는 시아버지의 눈치를 아는지 모르는지 신세대 며느리는 아이들과 깔깔대며 세상 모르게 열심히 밥만 먹고 있고.. 더욱 한심한건.. 남편이라는 녀석은 제 아내가 마냥 사랑.. 2004. 11. 1.
개팔자 아파트 상가앞 도로를 걷다가 자전거 뒤에 실려가는 개를 봤다 필경 영양탕집으로 가는 것이리라.. 철장에 갇힌 개.. 그 눈빛에서는 절망이 절절하게 묻어나온다 개는 죽음의 냄새까지도 맡는걸까? 얼마후.. 보신탕집 팔팔 끓는 국솥으로 들어가던가.. 혹은 산소용접기로 까맣게 그을릴 신세가 될.. 자신의 운명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철장속에서 침묵을 지키는 힘 없는 모습에 휑한 눈빛은 바라보기조차 섬뜩하다 ..... 건너편 도로에 알록달록 털을 장식한 강아지 한마리를 안고 젊은 여자가 지나간다 아무 걱정도 없어보이는 행복한 강아지와.. 사람의 몸보신용으로 오래지 않아 사라질 잡종개의 신세... 단순히.. 혈통탓 이나 주인을 잘못 만난 탓으로 여기기에는 너무 비정하다 배고프고 어렵던 시절,,서민들의 몸보신용으로.. 2004. 11. 1.
어려운 일 집을 비웠다 돌아오니 베란다 더덕넝쿨이 축 쳐져있다 누렇게 시든 잎사귀를 뜯어내며 생각한다 무언가를 사랑 할때는 나름대로의 책임감이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대상이 식물이든 동물이든 사람이라 할지라도.. 애정으로 그들의 언어를 읽어야 하는 것.. 그렇게 못하면 사랑한다고 자.. 2004. 11. 1.
K에게... 남쪽지방엔 많은 비가 내렸다는데.. 여긴 그저 무덥기만 합니다 어쩌면, 오늘밤엔 이곳에도 굵은 빗줄기가 떨어질 것 같아요 객지에서 며칠 마신 술 때문에 눈이 아른거려서.. 컴퓨터에 앉아서 긴글을 쓰긴 어려울 것 같군요 술기운에서 벗어나고 싶어 오늘.. 집 가까운 강가에 나가 보았습니다 개망초꽃이 무리를 지어 있는 강둑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하릴없이 한나절을 보냈는데.. 올갱이 주우러 온 사람들에게서 운좋게 올갱이탕을 한그릇 얻어먹을 수 있었습니다 걸쭉하게 끓여낸 진국에 수제비를 떠서 먹으니 별미더군요 올갱이 수제비라고나 할까? 소주 한잔을 곁들여 먹는 그 맛이 진짜 끝내줬습니다 해장한답시고 다시 술먹는 악순환을 벗어나지 못하는 저는.. 정말 못난 사람입니다 요즘 뭐든지 잘 먹히는군요 게다가 집에서나 밖.. 2004. 11. 1.
Stand By Me! 밤이 찾아왔을 때, 땅이 어둠으로 뒤덮였을 때 그리고 달만이 우리가 볼 수 있는 유일한 빛일 때도 나는 두렵지 않습니다. 정말로 두렵지 않습니다. 그대가 내 곁에 있어주기만 한다면 Stand By Me ..... 알고 지내던 분이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늦장가를 들었지만, 남겨진 가족이 적지 않은 그가.. 눈 앞에 어른거리는 노모와 아내 그리고 올망졸망한 아이들을 어떻게 세상에 두고 떠났을까 사랑했던 사람들,아름다웠던 추억,남은 미련.. 눈앞에 귓가에 얼마나 스치다 질긴 끈을 놓았을까 가슴에 묻어둔 한이나 슬픔들을 버리지 못하고 삶밖으로까지 치렁치렁 이끌고 갔을까 제발 그러지 않기를... 종이인형을 오리듯 필요한 부분만 가위질 하고 남은 짜투리를 훌훌 버리고 떠났으면 좋을 것을... 다 부질없는 짓이려니.. 2004. 11. 1.
선택적 기억력 난 아직 총기가 있고.. 기억력 또한 쓸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선택적 기억력 면에서 낙제인가 보다 서점의 많은 책들 가운데서 작은 문구 하나 단번에 찾아내는 그런 점엔 스스로 놀라기도 하지만.. 쓸데없는 기억을 오래 붙들고 있다는건.. 오히려 피곤한 일이다 골치 아픈 것은.. 잊어버려도 괜찮은 일들이 더욱 선명하게 떠오른다는 것.. 얼마나 많은 말과 생각들이 머리에 스쳐 나의 수면과 일상을 방해했는지.. 한때는 나의 닉네임을 레테로 할까도 생각했다 기억하지 말아도 될 일을 깡그리 지워내고 싶기 때문에... 어제 커핏물을 가스렌지에 올려놓고 샤워하러 들어가서..불이 나기 직전에 발견했다 그 화기와 탄내를 느끼면서도 나는 무신경하게 외면했던 것이다 내가 원하는 망각은 그런 것이 아닌데, 정작 필요한.. 2004. 11. 1.
새같은 사람은... 그집 마당.. 평상에 누워 강 건너 산을 봤을 때.. 푸른 숲 위로 하얀 물새가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무슨 줄이라도 타고 날아가듯 강가에서 튀어오른 새는 반듯한 선을 그으며 날아갔다 ....... 새는 새들끼리만 정답다 사람이 아무리 정을 주어도 날아가면 그뿐.. 날개가 있으므로 잠시 스쳐.. 2004. 11. 1.
화분을 보며 당신이 곁에 있다면.. 만산에 다투어 피는 꽃잎만큼 "사랑해" "사랑해"를 속삭이고 싶은 아침입니다 겨우내 시들시들했던 난초의 누런 잎을 가위로 잘라내고 영양제를 꽂아주고 스프레이를 뿌려주었더니 난초잎이 생기가 넘칩니다 사람이나 식물이나 사랑으로 사는 건 같습니다 신경을 쓰지 않으면 작은 바람에도 사소한 병에도 금방 시들해지니까요 올해는 지난 해 침묵으로 일관했던 난초가 꽃을 피웠습니다 남도여행길 화개장터에서 샀던 더덕나무(?)도.. 싹을 틔워 제법 자랐습니다 오월이 되면 지난 해처럼 왕관 모양의 꽃이 피겠지요 좁은 베란다를 생각해서 많은 화분을 가꾸는 것도 실은 걱정이 됩니다 더덕이 자라 길게 줄기를 뻗어 키 작은 것들을 괴롭히지 않을까 하는.. 그러나 그들은 모두 그렇게 어울려 사는 존재들이니 그리 .. 2004. 11.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