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동 종점(42번 버스)~백운봉~관암산~시루봉~동문암~ 세동 종점
6km( 2시간 40분)
매미소리가 왠지 녹슬었다고 생각될 때 가을은 온다.
벚나무가 그 어떤 나무보다 먼저 이파리를 땅으로 내려 놓을 때 가을은 온다.
배롱나무가 더 이상 꽃을 밀어 올리지 않을 때 가을은 온다.
팽나무 열매가 갈색으로 익어가고 산딸나무 열매가 붉어질 때 가을은 온다.
도라지꽃의 보랏빛을 손으로 쓰다듬어 주고 싶을 때 가을은 온다.
여치의 젖은 무릎과 방아깨비의 팔꿈치와 귀뚜라미의 수염을 생각할 때 가을은 온다.
담배밭에서 담뱃잎을 더 이상 딸 일이 없을 때 가을은 온다.
수수밭이 우수 어린 표정으로 과묵해질 때 가을은 온다.
냇물 소리가 귓가에서 차가워질 때 가을은 온다.
무심코 바라보던 저수지 물빛이 문득 눈에 시리게 들어올 때 가을은 온다.
하늘을 올려다 보는 시간이 많아질 때 가을은 온다.
비행기가 늘어뜨리고 간 비행운을 따라가고 싶을 때 가을은 온다.
텅 비어 있는 우편함을 괜히 기웃 거릴 때 가을은 온다.
라디오에서 듣는 이소라의 노래 '바람이 분다'를 혼자 배워보고 싶을 때 가을은 온다.
버스의 금간 유리창이 예사롭지 않게 보일 때 가을은 온다.
거리에서 연탄 실은 트럭을 자주 볼 때 가을은 온다.
밤마다 다리에 감고 자던 죽부인과 이별하고 싶을 때 가을은 온다.
넥타이를 매고 싶어지고 옷장을 정리하고 싶어질 때 가을은 온다.
대학 다니는 아이의 2학기 등록금을 어떻게 마련할까 고심할 때 가을은 온다.
아버지, 라는 말이 울컥해질 때 가을은 온다.
안도현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