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다 그친 날, 슬레이트집을 지나다가
얼굴에 검버섯 핀 아버지의 냄새를 맡는다
양철 바케쓰에 조개탄을 담아 양손에 쥐고 오르던 길
잘 열리지 않는 문 앞에서 언 손으로 얼굴 감싸쥐어도
겨울 새벽은 쉬 밝아오지 않고,
막 피워낸 난로 속 불꽃은 왜 그리 눈을 맵게 하던지
닫힌 문 작은 구멍마다 차가운 열쇠를 들이밀면
낡은 내복 속 등줄기를 따라 식은 땀 뜨겁게 흘러내렸다
한달치 봉급을 들고 아들이 돌아오면
아버지는 마른 정강이를 이끌고 해장국집으로 갔다
푹 들어간 눈 속으로 탕 한 그릇씩 퍼담던 오후
길 끝 당산나무에 하늘 높이 가슴치는 매미 울음소리 속에서
아버지와 아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껴안을수록 멀어지는 세상
우산도 없이 젖은 머리칼을 털며
서창 해장국집 문을 열고 들어서면
습기 찬 구름 한덩이 닫힌 창 밖으로 빠르게 흘러가고
검버섯 핀 손등 위로 까맣게 아버지 홀로 걸어가신다
살다 허기지면 찾아가는 그 집
금빛 바늘처럼 날렵한 울음 사이로
까마귀 한 마리 잎을 흔들며 날아간다
- 전성호시인의 '서창,해장국집'-
너무 슬픈 시.. 술생각이 나는데 술을 마실 형편이 안 되는 날..
이런 시를 몇 줄 읽으면 대리만족은 된다 조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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