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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바람

by 류.. 2016. 8. 18.

 

 



가을날 초저녁, 골목 안 주점에 앉아
홀로 그를 기다리며 술잔을 기울이다가
유리창 너머 바깥을 무심코 바라보았다
그때, 어둠처럼 무엇인가 스멀스멀 지나갔다 

바람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여전히 홀로 술잔을 기울이며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는 사람은 오지 않고
창 밖에서 어둠이 들끓어 오르더니
무엇인가 드르륵드르륵  
소리를 내며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그러나 형체는 남아 있지 않았다. 역시 바람이었어,

가을바람 부는 소리는 너무 소란스러워,
혼자 중얼거릴 때, 주점의 문이 드르륵 열리더니
기다리던 그가 바람처럼 들어와 내 앞에 앉으며
술잔을 기울이며 혼자 중얼거린다
그가 아니라 바람이었어, 천지에 바람 부는 소리뿐이야,
그는 원래 없었던 거야,

나는 취했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한다
아니야 나 여기 있어, 바로 자네 앞에 있어,
이 자리에 앉아 자네를 오래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지,
나의 목소리에서 바람소리가 드르륵 났다

그가 술잔을 기울이며
가을바람은 소리가 시끄러운 법이야
나는 그를 남겨두고 주점을 빠져나와 가을밤 어둠 속으로
들끓는 바람으로 스쳐지나간다

아무도 손 흔들어 주지 않는다
나뭇잎 몇 개가 온몸을 흔들며 어둡게 떨어질 뿐이다
그는 골목 안 주점 그 자리에 앉아
홀로 술잔을 기울이며
스쳐지나가는 나를 무심히 보고 있었다. 

그날, 밤새도록 가을바람은
내 안에서 드르륵드르륵 불었다.
 
 
 
구석본
 
 

♬  Gare du Nord - I'm not a woman, I'm not a 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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