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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바다에서 나는 부활한다 - 정일근

by 류.. 2014. 1. 20.




 

      바다에서 나는 부활한다 - 정일근



      삶을 통째로 빨아널고 싶은 날

      바다,  푸른 바다로 가자

       

      지친 살덩이와 거친 뼈다구 훌훌 벗어던지고

      찌들어 바짝 말아버린 영혼은 머리속에서 끄집어 내버리고

      도시에서 검게 찌들어버린 희망 가슴에서 꺼내

      바닷물에 넣어 빨래를 하자

       

      추억의 뒷주머니에 넣어두고

      까마득히 잊어버린

      빛바랜 첫사랑도 꺼내 빨아야지

       

      와이셔츠 목덜미에 묻은 때같은

      풀이 죽어 쭈글쭈글해진 꿈에서

      시커먼 구정물이 꽐꽐 빠져나가

      다림질한 팽팽한 수평선이 될때까지

      나를 통째로 빠는거야

       

      바다만 한 둥글넓직한 대야에

      세상에서 가장 푸른 바닷물을 부어놓고

      맨발로 그 빨래들을 신나게 밟아서 빨아보자

      삶에서 푸른 물이 펑펑 다시 솟아 나올 때까지

      지근지근 자근자근 밟아주자

       

      바다에 나를 넣어 빨래하면서 심심해지면

      다도해의 섬을 모아 내 입술 위에 올려놓고

      휘파람을 불어주리라

      도망가는 고래를 잡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내 그리운 사랑의 시를 읽어 줄 것이니

       

      모든 것을 다 받아주기에 바다란 이름이 된

      우리나라 쪽빛바다에 나를 빨아

      뜨거운 여름 햇살아래 탈탈 털어 말리면

      나는 봄 도다리 가을 전어처럼

      여름 갯장어 겨울 새조개처럼

      온몸으로 펄쩍 펄쩍 뛰며

      싱싱하게 부활한 것이다

       

      그때 내가 당신을 다시 유혹한다해도

      바다를 몸에 쫙 붙은 부루진처럼 입고 젊어진

      나를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boly

         

출처 : 여행, 바람처럼 흐르다
글쓴이 : boly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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