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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롱나무

by 류.. 2011. 7. 31.

 

 

    배롱나무를 알기 전까지는 많은 나무들 중에

    배롱나무가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가장 뜨거울 때 가장 화사한 꽃을 피워놓고는

    가녀린 자태로 소리없이 물러서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남모르게 배롱나무를 좋아하게 되었는데 그 뒤론

    길 떠나면 어디서든 배롱나무가 눈에 들어왓습니다.

    지루하고 먼길을 갈 때면 으레 거기 서 있었고

    지치도록 걸어오고도 한 고개를 더 넘어야 할 때

    고갯마루에 꽃그늘을 만들어 놓고 기다리기도 하고

    갈림길에서 길을 잘못 들어 다른 길로 접어들면

    건너편에서 말없이 진분홍 꽃숭어리를 떨구며

    서 있기도 했습니다.

    이제 그만 하던 일을 포기하고 싶어

    혼자 외딴섬을 찾아가던 날은

    보아주는 이도 없는 곳에서 바닷바람 맞으며

    혼자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꽃은 누구를 위해 피우는 게 아니라고 말하듯

    늘 다니던 길에 오래 전부터 피어 있어도

    보이지 않다가 늦게사 배롱나무를 알게 된 뒤부터

    배롱나무에게서 다시 배웁니다.

     

     

    사랑하면 보인다고

    사랑하면 어디에 가있어도

    늘 거기 함께 있는 게 첫눈에 보인다고

     

     

     

     

    도종환

     

     

     *꽃숭어리 : 많은 꽃송이가 달려 있는 덩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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