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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구룡포로 간다

by 류.. 2007.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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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선희 첫 시집 <구룡포로 간다>
어판장 한 켠

살았다고, 싱싱하게 살아있다고 외치는

늙은 여자와

죽은 고동이

있다

-49쪽, '풍경' 모두


구룡포 뱃머리에 앉아 과메기처럼 엮이는 여자

호수의 도시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나 춘천에서 줄곧 자란 여자. 지금은 구룡포의 바다와 구룡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제 살붙이로 여기며 살아가고 있는 여자. 짭쪼롬한 소금기 찐득하게 묻어나는 바다와 그 바다를 삶의 텃밭으로 삼아 힘겨운 삶을 터진 그물처럼 올올이 기우며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깊고도 지독한 사랑에 포옥 빠져 헤어나올 줄 모르는 여자.

그 여자가 시인 권선희다. 시인 권선희는 오늘도 구룡포 "어판장 한 켠// 살았다고, 싱싱하게 살아있다고 외치는// 늙은 여자와// 죽은 고동"처럼 널브러진 삶을 시의 씨줄과 날줄에 과메기처럼 촘촘촘 엮는다. 때론 "처녀 고래 한 마리/ 어판장 바닥에 누워/ 여러 사내 받아내고 있"(끝내주는 것)는 모습을 엮기도 하고, '비바람에 펄럭거리다 바다로 간 현수막'을 엮기도 하다가, 그 스스로 구룡포 부두 끝에 과메기처럼 엮인다.

시인 권선희가 춘천을 떠나 바닷가로 간 까닭은 무엇일까. 시인은 왜 아늑한 둥지를 훌쩍 떠나 백령도와 제주도 등 바다 곁만 뱅뱅 맴돌았을까. 그리고 그 바다를 모두 뒤에 버려둔 채 하필이면 구룡포로 갔을까. 그 까닭은 어느날 갑자기 해병대 장교로 있었던 한 남자를 만났기 때문이었다. 그 남자와 결혼을 하면서 바다를 품기 시작했고, 나중엔 그 바다가 시인을 놔주지 않았다.

구룡포 앞바다는 피붙이로, 구룡포 사람들은 살붙이로

"방금, 바람이 다녀갔다/ 그물을 꿰고 만선기 꼽으며 채비했던/ 무수한 사연들이 출항했다/ 은빛 돛대를 세우고 귀환을 약속하는 갈매기떼/ 우루루 비상하는/ 여기 구룡포,/ 나는 시를 쓰지 않았다/ 축항을 치는 파도와 말봉재 골짝골짝 넘나드는 바람/ 그들의 이야기를 가끔 받아 적었다."-'시인의 말' 모두

지난 2000년 3월 25일, 삶의 터전인 포항에서 구룡포로 들어가 '구룡포가 되어버린'(?) 시인 권선희가 첫 시집 <구룡포로 간다>(애지)를 펴냈다. 모두 53편의 시가 실려 있는 이 시집에는 비릿한 바다내음과 비릿한 삶이 밀물처럼 쏴아 밀려왔다 썰물처럼 스르르 빠져나간다. 한 마디로 구룡포와 구룡포 앞바다를 끼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든 것이 시가 되어 서로 아웅다웅 하고 있다는 그 말이다.

그 아웅다웅 속에는 '집어등'도 있고, '덕수씨, 막도장, 바닷가 한의원, 탁주, 툇마루, 빵게, 종점다방' 따위도 한데 섞여 있다. 그곳에서 시인은 '북어의 노래'를 부르기도 하면서 '생선상자를 꿰매며, 물미역, 용왕맞이 굿판, 매월여인숙, 항구양장점, 암컷의 꿈, 평강이발소, 어촌 주일예배, 라면, 열무김치가 슬프다. 폐경을 만나다, 길을 보면 가고 싶다, 저녁을 위한 변명' 등의 시를 줍는다.

앞에서 짧게 말했다시피 구룡포는 권선희 시인의 피붙이나 살붙이가 있는 곳이 아니다. 시인은 그저 무작정 짐을 싸들고 구룡포로 갔다. 시인을 살갑게 맞아주는 사람도, 짐을 풀만한 마땅한 집도 없었다. 하지만 시인은 독하게 견뎌냈다. 그리하여 마침내 시인은 시의 그물로 구룡포 앞바다를 피붙이로 건졌고, 구룡포 사람들을 살붙이로 건져올리며 한 몸이 되었다.

자화상 같은 집어등 놓지 못하는 시인

집어등 하나를 얻었다
망망대해에서 삐기질 하는 놈
수천 촉 아찔함을 쏘며 오징어떼 후리는 놈 치곤
참 순하게 생긴 녀석이다

저녁이 오자
오두막엔 잘잘한 별들이 내려앉고
축항을 치는 파도소리 크다

백열등 알전구라도 빼고
끼워보고 싶었지만
어디에도 대갈통만한 녀석을 끼울 똥꼬는 없다

-12쪽 '집어등' 몇 토막


구룡포에서 갈매기처럼 끼룩거리며 살아가는 시인 권선희. 시인은 어느날 문득 피붙이 같은 집어등 하나를 얻는다. 하지만 누구에게서 얻었는지는 모른다. "나만 보면 겅중겅중 뛰는 눈 검은 사내"(덕수씨), 과메기 덕장 경비를 서고 있는 그 덕수씨가 준 것인지, "올해 예순 셋인데 애인이 예순 다섯인"(꽃에 대하여) 찬모가 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근데, 그 집어등은 "오징어떼 후리는 놈 치곤" 너무나 매끈하게 잘 빠졌다. 머리카락이 빠져나갈 정도로 드세게 부는 태풍과 거친 바다를 제 사내로 삼아 밤마다 아랫도리를 한껏 벌려 오징어떼를 후리는 집어등. 그 집어등을 마땅히 둘 곳이 없다. 마치, 낯 설고 물 설은 구룡포를 처음 찾았을 때 짐을 풀 마땅한 집이 없어 쩔쩔 맬 그때 시인의 그 어정쩡함처럼.

그래서일까. 시인은 끝내 자화상 같은 집어등을 손에서 놓지 못한다. 시인은 "결국 시든 꽃을 뽑고 꽃병"에 집어등을 꽂는다. 꽃병 또한 그때 낯선 이방인인 시인 자신을 받아들이는 구룡포 사람들처럼 "맙소사 하는 눈치였지만/ 이내 균형을 잡고 투명한 등을 환하게 떠 받들더니/ 오색 깃발 펄럭이며/ 멋지게 출항했다".(집어등) 그때 시인이 구룡포로 멋지게 출항한 것처럼 그렇게.

바닷가에서 살아가는 여자들의 어쩔 수 없는 숙명

낯선 동지와
서로 입을 꿰고 한 줄에 걸렸다

내장은 모두 발라내고
영롱한 의식은 바다에 남겨두고
헛것인 몸뚱이만
펄럭인다

동해 비릿한 바람이
불어오면 올수록 나는
나를 잃어야 한다
꾸득꾸득 밀려드는 안타까운 삶
우두커니 밤바닷가에서
눈알도 없는 내가
안주로 국거리로 가야 한다

너희들이 가져가는 건 빈 몸뚱이
저 깊은 바다 속 집에서는
내 아이들이 성실하게
살다간 아비의 전기를 읽고 있다

-42~43쪽, '북어의 노래' 모두


구룡포 바닷가 한 귀퉁이에 서서 꾸득꾸득 말라가는 어린 명태를 바라보고 서 있는 시인 권선희. 시인은 어린 명태가 북어로 탈바꿈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 자신의 삶 또한 "낯선 동지와/ 서로 입을 꿰고 한 줄"에 걸려 있는 저 어린 명태와 같다고 여기는 것은 아닐까. '내장'은 춘천이란 고향에 버려두고, "영롱한 의식"은 포항에 남겨두고, "헛것인 몸뚱이만" 구룡포에서 펄럭이고 있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권선희 시인의 시집 곳곳에는 '북어의 노래'처럼, '내장'과 '영롱한 의식'은 저만치 수평선에 걸어두고 빈 몸뚱이만 서럽게 남은 삶이 유난히 많다. 특히 시인이 만난 구룡포 여자들의 삶은 처절하다 못해 아프기까지 하다. 이는 어쩌면 바닷가에서 살아가는 여자들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인지도 모른다. 바다는 삶의 텃밭이기도 하지만 고기잡이를 하는 남편을 순식간에 삼키는 웬수 같기도 하기 때문이다.

"여자 나이 마흔 아홉이믄 말이요/ 길바닥에 내뻔져놔도 아무도 안 줍어 갈 나인기라요"(꽃에 대하여)나 "에고 이 여편네야…빤스나 하나 장만하그라"(툇마루), "한 여자 말소된 자리/ 깨끗했다"(끝내주는 것), "꼬부랑 할매…행방불명 신고하러 간다"(쥐며느리를 닮았다)라거나, "궁녀씨 막걸리 사발 들고 기우뚱 일어선다"(궁녀네집), "바다에서 뜯어 온 머리칼과 세상에서 뜯은 머리칼 챙겨/ 쑤셔 넣으며 콧물 훔치는/ 미끌미끌한/ 저/ 여자" 등이 그러하다.

꽃다지 같던 아내는 핏덩이 콸콸 쏟고 져버렸는데

마누라 가슴에
평생 대못 치던 재주가
방파제 끝에 나와 있다
소형자망어선 늘어진 가슴
물컹물컹 주무르며
물결은 물결답게 일렁이는데
녹슬어 구부러진 못의 허리 두드려 펴며
젖은 상자를 꿰매고 있다

꽃다지 같던 아내는 노란 꿈 하나 피우지 못하고
못자국 송송한 구멍으로
핏덩이만 콸콸 쏟고 져버렸는데
죽자고 살아 온 뒤늦은 날들

-46쪽, '생선상자를 꿰매며' 몇 토막


"고요히 바다로 가 미친 듯 살고 싶다/ 수초 사이로 슬깃슬깃 헤엄치다/ 가끔은 수면으로 올라 금빛 들숨을 쉬고/ 바위틈에 새까맣게 새끼를 쳐서/ 우르르 몰고 다니고도 싶다"는 시인 권선희. 시인은 오늘도 "거나하게 취하여/ 호기 부리며 수컷을 탐하기도 하는/ 그렇게 등지느러미 날카롭게 세운 한 마리/ 암컷"(암컷의 꿈)을 꿈꾼다. 시인은 그렇게 구룡포의 이야기를 시로 쓰는 것이 아니라 그저 받아 적는다.

▲ 시인 권선희
시인 권선희의 첫 시집 <구룡포로 간다>는 구룡포의 푸르른 바다를 논과 밭으로 삼아 구룡포에서 살을 부비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속내다. 시인은 그 구룡포 앞바다를 마음의 창문으로 삼아 매일 아침 수평선을 열었다가 저녁 때가 되면 수평선을 닫는다. 시인이 마음을 묻은 그 수평선에는 구룡포가 빨래처럼 걸려 구룡포 사람들의 삶의 속내 구석구석을 이리저리 흔들기도 하다가, 마침내 시인의 몸까지 샅샅이 핥는다.

시인 안상학은 "강원도 춘천산 토실한 감자(권선희)가 냄비 바닥에 알몸으로 누워 구룡포 갯내 뒤집어쓴 장삼이자 도루묵을 떠받들고 고추장 된장 내음 나는 경상도 동부 사투리 양념 맛 들여 한바탕 졸여낸다"며 "시인은 스스로를 바닷가 사람들의 가슴으로 유폐하고 그들의 눈에 창을 내고 세상을 응시한다. 바다에 목숨 건 삶들의 대부분이 어둠을 날것으로 덕장에다 널어놓고 얼마간의 빛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고 평했다.

시인 권선희는 1965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나 1998년 <포항문학>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지금은 포항예술문화연구소 회원과 포항문인협회 사무국장, <푸른시> 동인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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