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얘기해줄까요?
우선 흰 도화지의 한가운데를 눈대중으로 나눈 다음
맨 위에서부터 아래 끝까지 줄을 내려 그어요...
이 선은 뭘 의미하냐 하면 왼쪽 벽과 오른쪽 벽을 나누는 건데
우선 지금 당장은 평면처럼 보이지만
이 두벽은 정확한 90도를 유지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왼쪽 골목에서 오른쪽 골목으로 가려면
90도...몸을 회전해야 되는 기역자 벽인 거죠...
일단 왼쪽 벽에다가는 한 남자를 그려요...
벽 쪽에 몸을 바싹 붙이고 오른쪽 벽을 향해 몸을 돌리고는
살금살금 숨박꼭질하듯 눈치를 보고 있는 옆모습의 한남자를요...
오른쪽 벽 역시 마찬가지로 한 여자를 그려요...
여자 역시 벽 쪽에 붙어서 조심스레 누군가를 훔쳐보기라도 하듯
잔뜩 긴장을 하고 있는 옆 모습 여자를요...
실제 거리는 몇 센티에 불과하지만 90도로 꺾인 벽이기 때문에
상대방은 저 벽 뒤에 누군가가 가까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죠...
그림은 그림이기 때문에 그렇게 정지해 있지만 1초 후
만약 그 두사람이 앞으로 조금만 움직인다면
코를 부딪치게 될지도 몰라요...
그리고 다시 1초 후 두사람 모두 화들짝 놀란 나머지
몸을 정반대로 되돌려 멀리멀리 뛰어가버릴지도 몰라요...
사랑의 시작은 그래요...
어떤 이상적인 호감의 대상이 한번 내 눈을 망쳐놓은 이후로
자꾸 내 눈은 그 사람을 찾기 위해 그 사람 주변을 맴돌아요...
한 번 본게 다인데 내 눈은 몹쓸 것으로 중독된 무엇처럼
그 한 사람으로 내 눈을 축축하게 만들지 않으면
눈이 바싹 말라비틀어질 것 같은 거죠...
하지만 이 그림은 혼자서만 애태우는 사랑이 아니라
두 사람이 동시에 서로의 존재 때문에 애달파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두 사람이 부딪치고 나면 아마도 두 사람은
마음을 터 놓으면서 자신의 감정이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고
말하게 될지도 모르죠...
"사실 난... 오래전부터 당신을 좋아하고 있었어요..."
이 말을 동시에 둘이서 상대방이 똑같은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그냥 해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두 사람의 말이 골목 가득 메아리가 되어
울려 퍼지는 거예요...
이제 두 사람이 만났으니 서로를 훔쳐보기 위해
수도 없이 벽 모서리에 얼굴을 기댄 자리는 더 이상 닳지도 않을 거예요...
그러니 얼마나 다행이예요?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 그래요...
한 사람의 것만으론 가 닿을 수 없는 것...
그러기엔 턱 없이 모자라고 또 모자란 것...
그래서 약한 물살에도 떠내려가버리고 마는 것...
한 사람의 것만으론 이어붙일 수 없는 것...
그래서 아무 것도 아닌 게 되는 것...
자 지금까지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 얘기를 했어요...
이 그림 제목은 "그렇게 시작됐다" 이거예요...
근데 나는 과연 이 그림을 완성할 수 있을까요?
-이병률 "끌림"중에서...
La Buena Vida - Despues de To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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