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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맛집

正南津 장흥

by 류.. 2006. 2. 21.

 

 


    [오손도손 둘러앉아 얘기꽃을 피우며 석화를 굽는다. 알맞게 익으면 따악~ 딱 튀면서 살짝 벌어진다. ]

    ‘타악~탁’ ‘타다닥~탁!’
    참나무 장작이 벌건 불꽃을 피워 올리면 커다란 철망 석쇠 위에선 싱싱한 석화(굴)가 ‘타악~탁’ 튀면서 ‘쩌억’, 때론 ‘슬그머니’ 벌어진다. 우윳빛 속살을 사알~짝 내비치면서 짭조롬한 갯물이 ‘지지직’ 빠지면 뾰족한 칼로 껍질을 완전히 벌리고 모락모락 김이 나는 굴을 꺼내 ‘호호’ 불어 입안에 넣는다.
    생것도 아닌, 그렇다고 푹 익은 것도 아닌 쫄깃쫄깃하면서 마냥 부드러운 석화가 입안 가득 향기롭다. 네댓 명이 화덕가에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렇게 껍질을 까노라면 2만 원짜리 한 망태는 쉽게 없어진다. 맛있는 것 먹어 배부르고 나누는 이야기에 즐거움도 부르고…. 더 이상 부러울 게 없다.
    전남 장흥군 안양면 남포. 한국영화계의 거장 임권택 감독이 10여 년 전 이 지역 출신 소설가 이청준씨의 소설 ‘축제’를 촬영하면서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곳이다.
    작은 포구가 있고 바로 앞에 조그마한 섬이 오붓하게 자리잡은 작은 마을, 정남진이라 주장하는 남포. 문득 푸른 겨울바다가 보고파 남포를 향해 떠난다.

     

    [정남진 표지석과 영화 <축제> 촬영지 표지석.
    장흥군에서는 이곳을 정남진으로 정하고 관광객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

    처음 온 사람들은 마을 앞 바닷가에 떠 있는 소등섬부터 찾는다. 소나무 몇 그루가 멋들어지게 서 있는 소등섬은 바닷물이 빠져나가면 걸어서 들어갈 수 있는 아주 작은 섬이다. 물기 촉촉한 시멘트길을 따라 200m 남짓 걸어가면 한적한 작은 섬에 이를 수 있다.
    소나무와 키 작은 잡목이 오밀조밀한 바위들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데, 그 생김새가 꼭 소의 등 같이 생겼다 하여 소등섬이란 이름을 얻었다. 앞으로는 다도해의 오밀조밀한 풍경이 펼쳐지고 고개를 뒤로 돌리면 야트막한 산기슭에 오순도순 자리잡은 해변마을이 한 눈에 들어온다.
    한기가 얼굴을 얼얼하게 할 쯤, 이번엔 마을을 어슬렁거린다. 여느 바닷가 작은 마을과 다를 바 없지만, 이곳에서만 절로 눈에 띄는 게 있다. 바로 ‘축제’다. 마을 입구에서 ‘축제’ 촬영 기념비가 이방인을 맞더니, 구멍가게도 ‘축제수퍼’, 민박집도 ‘축제민박’이다. 마을은 온통 축제였다.
    사연을 듣고 보면, 그럴 만하다고 수긍하게 된다. ‘전통의 의식을 충실하게 복원하면서도 삶과 죽음의 근원적 슬픔을 깊이 있게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영화 ‘축제’는 거의 전부가 이곳에서 촬영됐다.
    1995년, 작가 이청준이 치매에 걸린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온 소회를 임권택감독에게 밝혔고, 임 감독은 그 자리에서 장례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한다.
    의기투합된 두 거장은 영화의 무대가 될 장소를 찾아 남해안 작은 마을을 더트고 다녔다. 이렇게 해안마을을 떠도는 과정에서 어느 날 남포를 찾았고, 정자나무가 유독 아름다운 집을 발견한 임 감독은 영화 촬영장소로 집을 빌려줄 것을 제안, 흔쾌한 답을 얻어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한다.
    마을이 생긴 이래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찾아든 적은 일찍이 없었다는 영화촬영. 배우와 고정스태프만도 주민보다 많은데, 엑스트라에 구경 온 사람들까지 하루 300여명이 이 작은 마을에서 북적거렸고 주민들도 자주 엑스트라로 불려 나갔다. 그렇게 해서 1995년 가을 두 달 내내 남포 주민들은 영화 제목 ‘축제’처럼 즐거운 장례식을 치렀다.
    지난 10년, ‘축제’라는 보통명사는 이곳 남포에서만은 고유명사로 자리잡았고, 주민들은 아직도 그 축제의 흔적에서 살고 있다. 정자나무는 몇 해 전 태풍에 뿌리째 넘어져 찾는 이를 안타깝게 하지만 집만은 ‘축제민박’이란 이름으로 살아있다.
    영화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느새 해질 무렵이다. 비닐하우스 안에 따뜻한 온기를 품은 장작불 석화구이집으로 발길을 옮긴다. 마을 앞부터 10여 곳이 훨씬 넘는 굴구이집이 늘어섰으니 어느 집으로 들어도 그만이다.
    이 곳 굴의 가장 큰 자랑은 모두 자연산이라는 점. “양식굴 사다가 쓰면 여그서는 못 살제. 쫓겨난당께”라며 낮에 바닷가 비닐하우스안에서 굴을 다듬던 동네 사람들도 자신있게 이 점을 강조했다. 굴은 열흘이나 보름에 한 차례씩 동네 사람 전체가 바다로 나가 공동으로 채취한다. 능력껏 캐 와 판 것만큼 개인의 소득이 되지만 대신 어장은 공동으로 관리하고, 채취도 개인적으로는 절대 하지 못한다. 굴 채취는 12월 중순 시작해서 3월초쯤 끝나는데 요즘은 찾는 사람이 많아 2월말을 넘기기 힘들다 한다.
    굴이 떨어지면 마을의 석화구이도 끝난다. 양식 굴은 절대 사용하지 못하도록 약조돼 있으니 손님이 오더라도 그냥 돌려보낼 수밖에 없다. 스스로를 지켜나가는 현명함이다.
    생으로 먹는 굴은 비릿할 때가 있고, 국이나 찌개에 넣은 굴은 상큼함이 사라지는데 바닷가에서 구워먹는 굴은 형언하기 어려운 고소함과 부드러움, 향긋함이 있다.
    굴을 구워서 까먹는 맛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짭자~름한 굴구이에 목이 갈갈해질 즈음이면 떡국이 나온다. 물론 굴을 넣어서 끓인 것이다. 촌스런 그릇에 색깔 없이 담긴 떡국을 갖은 고명을 얹어 멋을 낸 음식에 비할 순 없지만, 그 진국의 깊이는 자랑할 만하다. 그 소박함과 담백함에 절로 고향에 돌아온 느낌이 든다. 밖으로 나오니 휘엉청 뜬 달도 배가 불러 있다

     

     

     
    ▲ 전남 장흥군 대덕읍 내저리 바닷가 갬바우벌에서 주민들이 대나무발을 들춰 매생이를 채취하고 있다. 매생이 채취는 2월말까지 이어진다.

    ‘정남진’ 전남 장흥. 한겨울 장흥 바닷가 미각의 주제는 매생이다. 겨울 장흥 땅에 발 들여놓은 여행객치고 매생이 공세를 피해갈 사람 아무도 없다. 매생이가 뭔가? 죽이라면 죽이고 국이라면 국이며 반찬이라면 반찬인 음식이다. 12월말부터 3월초까지 식당마다 끼니마다 밥상 한복판을 장식한다. 진초록 빛깔에 걸쭉한 질감, 부드러운 맛과 향기로운 갯내음을 지녔다. 미식가들이 겨울 남도의 최고 별미로 꼽는 음식, 바로 매생이국이다.

    “매생이 맛있는걸 서울 사람이 다 알아놨으니 인자 물량이 딸려 큰일 나부렀소”

    ‘웬수’가 마을 효자로

    대표적인 매생이 생산지인 장흥군 대덕읍 내저리 갬바우벌로 가는 길가의 들판은 매서운 한파와 눈보라에도 아랑곳없이 벌써 봄빛이다. 보리며 마늘 따위 새싹들이 돋아 초록 융단을 이뤘다. 내저리 바닷가에 이르면, 얕은 바다 위로 또 다른 초록 융단이 펼쳐진다. 진초록 매생이가 들러붙은 대나무발이 앞바다를 메우고 있다. 갬바우벌 매생이 채취장이다. 갬바우란 옛날 개펄 가에 고욤을 얹어놓고 깨 먹던 바위가 있던 데서 유래한 지명이다. 어촌계 주민들은 요즘 매일 아침 갬바우벌에서 매서운 추위와 거센 바닷바람을 견디며 매생이 채취에 여념이 없다.

    몇년 전까지 주로 김을 양식하던 주민들에게 매생이는 “웬수 겉은” 존재였다. 김발에 매생이가 올라붙으면 그 발 주인은 사색이 됐다고 한다. 매생이가 섞인 김은 절반값도 못 받기 때문이었다. 내저리 주민 박만수(69)씨가 손을 내저으며 진저리를 쳤다. “김발에 매생이가 올라오믄, 그 발 농사는 끝나버린 것이여. 칼로 긁어내고 뜯어내도 안돼부러야. 울고불고 난리가 났었다닝께에.”

    그랬던 매생이가 이젠 김과 구실을 바꿨다. 박씨가 덧붙였다. “인자는 매생이발에 김이 붙으면 난리가 나불지이.” 김이나 파래가 섞인 매생이는 값이 뚝 떨어진다. 매생이는 이제 마을 주소득원이다. 지난해 겨울 석달 작업으로 내저리 어촌계는 15억원의 소득을 올렸다.

    내저리 주민들은 여름엔 농사를 짓고 가을부터 매생이 채취 준비작업에 들어간다. 상강(10월23일) 전후에 대나무발을 얕은 바닷가 자갈밭에 깔아 매생이 포자 채묘작업을 한다. 한달쯤 뒤엔 수심 2~의 안바다에 말장(대나무 말뚝)을 박고, 포자가 달라붙은 발을 수평으로 묶어놓는다. 3m짜리 발 열개를 한 ‘때’ 또는 ‘척’이라고 한다. 이번 겨울 내저리 갬바우벌엔 지난 겨울보다 100여 때가 늘어난 770여 때를 ‘막았다’(설치했다).



    본격 채취는 12월20일께부터 시작해 이듬해 3월까지 이어진다. 물때에 따라 작은 배를 타고 나가거나, 장화를 신고 들어가 발을 쳐들고 손으로 훑어낸다. 3월 이후엔 매생이의 “자클한(부드럽게 풀린) 맛이 사라지고” “까랍고(거칠고), 뻐셔진다(억세진다).” 색깔도 갈색으로 바뀌어 매생이철이 끝나감을 알려준다.

    바닷가 속풀이 음식이 한정식집 별미로

    매생이는 우리나라 남해 얕은 바닷가에서 자생하는, 갈파래과에 속하는 녹조식물이다. 개체의 올이 파래나 김보다 훨씬 가늘다. 남해안 중에서도 장흥·완도·고흥·강진·해남 등이 주산지다. ‘자산어보’와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엔 ‘매산태’ ‘매산’으로 적혀 있다. 나이 든 주민들은 지금도 ‘매산이’라고 부른다.

    남도 어민들은 매생이를 국으로 끓여먹어 왔다. 옛날엔 돼지고기와 함께 끓여 먹었다지만, 요즘은 주로 굴을 넣어 끓인다. 술 마신 다음날 아침 한그릇 후루룩 들이키면 어지간한 숙취는 그 자리에서 사라진다는 게 주민들의 말이다.

    “술 깨고 속 다스리는 덴 매생이국이 첫째여. 맛도 첫째고 영양가도 첫째랑께.” 숙취 해소말고도 위궤양·변비·혈압 강하 등에도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다.

    일부 바닷가 주민들만 즐기던 겨울 별미 매생이국이 최근 서울 등 대도시 일부 한정식집 기본 차림에 등장하면서, 찾는 이가 부쩍 늘고 있다. 겨울철 상온에서 3~5일밖에 보관이 안돼 겨울에만 먹어왔으나, 요즘은 급랭기술 개발로 사철 끓여내는 식당도 많다. 하지만 역시 음식은 제철이라야 제맛이 난다.

    헝클어진 실타래가 곱게 빗은 머리 모습으로

    33가구가 참여한 내저어촌계 매생이 공동작업장. 매생이를 갯물에 헹궈 김·파래를 골라내고, 물기를 짜 주먹 크기의 덩어리를 만들어 상자에 담는 작업이 한창이다.

    물에 헹궈낸 매생이 덩어리 모양은 꼭 곱게 빗어넘긴 여성의 맵시있는 뒷머리를 닮았다. 이것을 한 ‘재기’(잭이)라고 한다. 한 재기는 400g. 날랜 솜씨로 재기를 만들어 쌓던 아주머니가 말했다. “딱 잡으믄 딱 400g 나와불지라.” 한 재기는 되직한 국으로 끓이면 4~5인분이다.

    매생이 덩이는 상자에 담겨, 기다리고 있던 중간상인들에게 넘겨진다. 가격은 그날 작업량과 최근 수요 등을 감안해 중간상인들에 의해 결정된다. 지난 2월3일 소매가는 3000원, 도매가는 2500원. 1월초엔 4000원 안팎이었다. 택배 주문도 받는다.

     

     


    역시 시원한 ‘국’ 이 최고 녹지않게 살짝만 끓여야

    매생이, 어떻게 먹나?

    오염되지 않은 청정지역에서만 자라는 매생이는 철분·칼륨 등 무기염류와 비타민이 풍부한 건강식품이다. 요리법이 다양하지는 않다. 주로 국으로 끓여 먹는데, 지역마다 순서와 들어가는 양념류가 조금 다르긴 하지만, 되직하게 하면 죽이 되고, 묽게 끓이면 탕이 된다. 공통사항은 매생이를 잠깐 익혀 먹는다는 점이다. 오래 끓이거나 불이 세면 매생이가 녹아 물처럼 되기 때문이다. 먼저 매생이를 민물에 헹궈 두고, 한컵 정도의 물에 굴과 다진 마늘 등을 넣고 소금으로 간을 해 끓인다. 다음 매생이를 넣고 한번 끓자마자 바로 불을 끈다. 여기에 참기름 한두방울과 참깨 따위를 살짝 곁들여 낸다. 한번 끓인 매생이는 냉장고에 보관했다가 시원하게 먹어도 별미다. 요즘 일부 식당들에선 매생이로 칼국수·부침개 등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감태’도 있당께

    겨울 남도 바닷가 식당에서 매생이와 함께 상에 오르는 반찬에 감태라 부르는 녹조류가 있다. 매생이와 비슷해 보이지만, 매생이에 비해 올이 굵고 약간 씹히는 맛도 있다. 익혀 먹는 매생이와 달리 무쳐먹는데, 이것이 ‘감태지’다. 그러나 이 녹조류의 본명은 가시파래다. 얕은 바닷가 바닥에 붙어 서식하는 종이다. 본디 감태는 수심 30~40m 깊이의 바다속에 사는 넓적한 잎을 가진 갈조류다. 맛이 달고 향기로워 밑반찬 노릇을 톡톡히 한다.

    맛·인정 넘치는 토요 상설시장

    장흥읍내를 가로지르는 탐진강변에선 매주 토요일 낮 풍물시장이 열려 여행길에 들러볼 만하다. 지난해 7월 재래시장을 정비해 전통 체험여행 코스로 개발한 시장으로, 볼거리·먹을거리·살거리가 푸짐하다. 매생이국·감태지는 기본이고 국숫발처럼 생긴 해조류 꼬시래기 무침과 굴 무침 등 겨울 제철 해산물들을 싼값에 만날 수 있다. 풍물놀이와 각종 전통공연, 즉석 노래자랑을 즐길 수 있다. 출향민 등의 동창모임 장소로도 활용 되는 추억의 공간이자, 군수도 매주 빠짐없이 나타나 주민과 함께 어울리는 열린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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