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호해수욕장의 일몰(고창군 해리면 동호리)
이 십리 고창의 죽도 바닷길을 걸어나오면서 일행 중 누군가가 <해리> <해리>
하고 나직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그 이름이 내게는 어찌나 아름답고
아름답게 들리던지, 발이 뻘에 빠지는 줄도 모르고 나는 그 해리가 어디에서
살았을까 얼굴이 둥글었을까 야위었을까를 계속 생각하는 것이었는데, 물때가
되어 바닷물은 발목을 잡아오고 나는 아직도 해리라는 이름에 갇혀서 그가 해
리를 버렸다는 것일까 아니면 해리가 그에게서 떠나갔다는 것일까를 몹시 궁금
해하는 것으로 날이 저무는데, 어느덧 나의 마음도 저물어 나의 옛날 여자들중
제일 잊지 못할 소녀 한 명을 골라, 나도 너를 해리라고 부르며 아름답게 이
밤길을 걷고 싶다라고 아주 근사한 상상을 하고 있는데, 일행중 한 사람이 해
리와 나 사이에 갑자기 낯선 마을을 초대해 오는 것이었다. 저기 저 해리에서
저녁으로 조개죽을 먹고 가면 어떨까? 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해리가 차려내는 저녁상, 그 속에서 옛날의 순이, 순이 엄마,
순이의 머리핀을 아주 밤늦도록 만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해리는 추억을 경작하게 되었다/김영남
♬ Phil Coulter - Green Leaves Of Sum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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