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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완도 구계등

by 류.. 2005. 5. 19.
 
 


 

 

 

 

눈이 그치고 난 뒤의 해변은 파도 소리마저 조용히 가라앉아 있었다. 나는 안으로 활처럼 휘어져 있는 해안으로 내려갔다.수박만한 청환석들은 아래로 내려갈수록 참외만하게, 주먹만하게 작아지더니 물밀녘에 이르자 겨우 달걀만해졌다. 무릎 밑으로달빛에 부서진 파도가 은빛 거품을 물고 달겨들고 있었다. 언뜻 뒷전에서 바람이 이는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방풍림이 달빛 아래 떨고 있는게 보였다. 얼마만에 쳐다본 밤하늘인지도 모르지만 사금 광주리를 엎어 놓은 듯이 그야말로 무진장한 별들이 머리 위에 가득 내려있었다

 

윤대녕 <천지간>

 

 

 

 
 

흡사 우리네 삶을 닮은 곳

 

 

 

 
  최병윤(msiu) 기자  
 
 
 
 
 
 
 
서둘러 들어선 몽돌해변에는 붉은 해가 서서히 저물어가고 있었다. 제법 길게 펼쳐진 해변에는 어린 아이 엉덩이처럼 하얗고 부드러운 돌들이 가득하다. 정도리 몽돌은 동전만한 것에서 어른 장딴지만한 것까지 그 크기도 다양하다. 누가 일부러 그 많은 돌들을 모아 놓으려 했어도 힘들었겠다.

나는 급한 마음에 안내판이나 탐방로를 돌아볼 새도 없이 무작정 몽돌해변으로 다가섰다. 달그락 긴 해변 몽돌의 생김은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 눈을 떼지 못하고 돌들만 바라보며 걸었다. 그 길은 울퉁불퉁해도 고달프지 않으며 해변이 길어도 지루하지 않다. 돌을 딛고 걷는 길은 다소 투박하면서도 정감어리다.

빙하기가 끝나고 해수면이 높아지면서 몽돌들이 파도에 밀려 오고, 정도리 해변 양쪽에 있는 바위들이 부서져 밀려와 정도리 몽돌층이 만들어졌다. 파도에 의해 굴려지다 보니 둥근 몽돌이 되었고 돌의 종류로는 안산암, 유문암, 응회암 등이다.

몽돌은 생성되기까지의 시간만 오랜 것이 아니라 그 시간만큼 다른 돌과 부대끼며, 때로는 바다와 더불어 부딪혀야 했다. 사람으로 치면 오랜 시간 자신을 갈고 닦으며 수양한 성인인 셈이다. 그래서 나는 몽돌이 그저 하나의 돌, 혹은 여행지의 소품마냥 가벼이 느껴지지 않는다.

 
▲ 오랜 세월을 품어온 몽돌
 
 
 
정도리에는 몽돌 해변만 있는 것은 아니다. 태풍, 해일 그리고 염분으로부터 농작물과 마을을 보호하기 위한 구개등숲(방풍숲), 삶의 터전을 이루고 사는 정도리 마을, 뒷산 등도 존재한다. 그런 자연 속에 20여종의 새들, 바닷가 식물, 동물, 곤충, 사람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곳이 정도리다. 정도리에는 구개등숲을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는 관찰로가 마련되어 있다. 오붓하게 숲길을 거닐면서 자연을 닮아 보면 어떨까 싶다.

구계등은 '9개의 계단을 이룬 비탈'이란 뜻이다. 태고 이래 거센 파도에 닳고 닳아진 갯돌이 바다 밑으로부터 해안까지 아홉 계단을 이루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정도리 해변의 높이는 800m, 폭 200m이며, 뒤쪽 구개등숲에는 40여종의 상록수와 단풍나무가 어우러져 있다.

해변의 몽돌에는 녹색 해초가 붙어 자라고 있다. 그 모습이 마치 사람 머리카락과 같아 웃음을 자아낸다. 해초는 파래, 지충이 등으로 바다가 없는 곳에서 자란 내게는 신기하기만 하다. 머리가 다 벗겨진 대머리 아저씨의 머리, 머리카락이 자라나는 갓난아이의 머리, 머리숱 무성한 머리까지 이런 모양, 저런 모양 찾아 해변에 선 나는 웃음을 쏟아낸다.

 
 
 
 
 
 
▲ 사람의 머리카락처럼 자라나는 몽돌의 해초
 
 
 
저녁 정도리 바닷가에는 배가 두어척 놓여 있다. 긴 밧줄을 타고 시선을 더듬어 배를 보면 두리둥실 춤을 춘다. 긴 수평선 끝에는 멀리 남해의 섬들이 펼쳐진다. 청산도에서 시작하여 대모도, 소안도, 보길도 등 8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수평선과 맞닿아 있다. 내가 보고 있는 정도리의 풍경은 한 편의 풍경화다. 어느 유명 화가들의 작품보다도 위대한 자연의 풍경화다.

정도리는 그저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으로만 볼 곳은 아니다. 그곳의 자연에 부대끼며 몽돌처럼 삶을 이어온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바다로부터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방풍숲을 만들고, 자연과 바다에 대한 사랑과 겸허함을 가지고 살아온 것이 마을 사람들의 마음이다.

바다로 인해 어려움을 겪더라도 자연을 미워한다거나 증오하지 않으며 삶의 터전인 마을을 위해 숲을 만들고 신성시하며 살아왔을 것이다. 바다는 그들과 그들의 자손이 자연과 더불어 살아야 할 터전임을 알기 때문이다.

 
▲ 바다 위의 배처럼 내 마음은 요동친다
 
 
 
해는 어느새 바다 깊이 잠들어간다. 정도리 입구 쪽으로 나와 느티나무 옆에 앉았다. 발 아래 놓인 주먹만한 몽돌을 집어 들고 손 안에서 매만졌다. 긴 세월의 흐름을 이 작은 크기에 간직하고 있다니 자연은 그저 놀랍다. 말없이 고요한 정도리 몽돌해변과의 만남은 그렇게 갈무리 되어간다.

 
▲ 해가 내리고 아쉬움은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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