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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남해 독일마을

by 류.. 2005. 4. 17.



남해 금산에 자리잡은 독일마을(위).독일마을에 살고 있는 루트비히·김우자씨 부부.

남해대교와 아름다운 경치로 유명한 경남 남해군에 ‘독일마을’이 생겨 많은 이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소문을 듣고 온 방문객들이 줄을 잇고 있는 독일마을은 문자 그대로 독일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다. 전형적인 독일식 집과 파란 눈의 독일 노인의 산책하는 모습이 보이고 이따금 독일어로 이야기하는 소리도 들린다. 어떻게 독일인들이 이역만리 이곳 남해에 마을을 형성해 살게 됐을까?

사연은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0년대 초 박정희 정부가 들어섰을 때 우리나라는 변변한 자원도 돈도 없는 가난한 나라였다. 박정희 정부는 경제개발을 위해 외국돈을 빌리려 했지만 군사정권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미국 등의 비협조로 쉽지 않았다고 한다. 이때 서독이 1억5000만 마르크를 빌려주었다. 그런데 아무 조건 없이 빌려준 것은 아니다. 당시 서독 역시 경제개발로 인력이 달려 외국인 노동자가 필요했다. 특히 간호사와 광부가 많이 필요했는데, 우리 정부는 이들을 서독에 보내주고 그들의 급여를 담보로 하여 돈을 빌린 것이다. 이 돈은 장차 한국 경제 부흥의 종자돈이 됐다.

1차 서독 파견 광부 500명을 모집하는 데 4만6000명이 몰릴 정도로 당시 우리나라에는 일자리가 부족했다. 이들 가운데는 정규 대학을 나온 학사 출신도 수두룩했다. 이렇게 서독에 파견된 광부와 간호사들은 독일 경제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 간호사들은 ‘한국에서 온 매혹적인 도우미’ ‘복숭아 눈을 가진 간호사’ 등의 애칭으로 불리며 독일 사람들에게 매우 인기가 높았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훗날 귀국했지만 독일인과 결혼해 남은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그로부터 40여년이 흘렀다. 독일인 손자 손녀를 둔 60, 70대 노인의 이들은 연금으로 편안한 말년을 보내고 있지만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여생을 고향인 한국에서 보내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럴 즈음 당시 김두관 남해군수(전 행정자치부 장관)가 이런 사연을 듣고 이들을 위한 삶 터와 부대시설을 제공하겠다고 제의했다. 독일인 배우자들도 함께 한국에 가 살겠다고 적극 나서 약 50가구가 한국행을 희망했다.

이렇게 해서 남해군 삼동면 물건마을 뒷산 자락에 독일마을이 만들어졌다. ‘자기 취향대로 집을 짓되 독일식으로 짓기’로 하고 집과 정원들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멀리서 보면 건물 외양 때문에 전형적인 독일마을처럼 보인다. 독일마을 터는 바다에서 상당히 떨어진 산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남해의 영산(靈山)인 금산의 한 줄기가 길게 뻗어 가다가 멈춘 곳이다.

풍수적으로 이곳 터를 살피는 것은 어렵지 않다. 풍수가 땅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맞느냐를 따지는 것이라면, 이곳은 농부나 어부에게는 맞지 않는다. 농부들에게는 이곳이 너무 가파르고, 어부들에게는 바다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년을 한가롭게 보낼 이들에게는 아주 쾌적한 공간이다. 뒤로는 산이 좌우로 팔을 펼쳐 감싸주고, 앞으로는 남해바다가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이들이 터전을 마련할 때 ‘이곳에 사는 거미, 지렁이들과도 친하게 지내자!’고 할 정도로 자연과의 공존을 생각했던 만큼 이들과 주변 산들도 잘 어울린다.

현재 이곳에는 올해 1차로 입국한 6가구가 살고 있다. 앞으로 남해군은 독일산 치즈, 햄, 포도주, 빵 등을 파는 독일 상점을 열어 관광명소로 만들 계획이다. 입국한 이들 가운데는 1970년대 간호사 김우자씨와 결혼한 루트비히씨(76)가 있다. 독일에서 42년 동안 세무서에 근무한 그는 고향 마인츠에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포도밭과 포도주 창고가 있을 정도로 포도주에 조예가 깊다. 남해의 언론매체에 ‘와인 시음회’를 통해 포도주를 포함한 독일문화를 소개하느라 바쁜 그는 처가가 있는 한국에서 “독일문화를 알리는 메신저 역할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남해는 독일마을을 통해 독일문화의 참모습을 알리는 명당 한 곳을 갖게 됐다.   (주간동아, 2005.3.1)

 

 

 

경남 남해 '독일 마을'…'유럽풍 환경' 가꾸고 노후 만끽

8가구 독일 연금 받아 은퇴 생활
간호사·광부 출신…방송국 건립 예정

 

 

 

 

 

 

 
경남 남해군의 끝자락 삼동면 물건리의 야산 언덕배기에 바다를 굽어보며 자리잡은 유럽풍의 집들로 이뤄진 마을이 있다. 흰색 벽에 빨간색 지붕의 전통 독일식 집이 남해바다와 어우러져 한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 착각에 빠진다.

이곳은 1960년대 독일에 간호사.광부로 갔던 교포들이 은퇴후 여생을 고국에서 보내기 위해 독일인 남편 등과 함께 귀국해 터를 잡은 '독일마을'이다.

2003년 1월부터 한 두 집씩 입주한 이 마을엔 21채의 집이 지어져 있고,연말까지 10채가 더 들어설 예정이다. 현재 이곳에 사는 주민은 모두 8가구 16명(독일인 2명포함).

주민들은 모두 독일에서 받는 월 200만~250만원의 연금으로 생활하고 있다. 이 곳에 집만 지어놓은 채 독일에 살고 있는 교포들은 연금을 받는 나이(60~65세)가 될 때까지 독일에서 1~2년간 더 머물다 귀국할 예정이다.

 

 

 



마을 주민들은 독일어.한국어를 섞어 사용하고 집 실내장식도 모두 독일식으로 하는 등 '독일풍'을 유지하면서 살고 있다. 이들은 인근 양로원.고아원 등에서 봉사활동을 하거나 텃밭을 가꾸면서 지내고 있다. 매월 마지막 토요일은 인근 주민들과 와인파티를 열기도 한다. 최근엔 이 마을을 찾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주민들은 이들 관광객들을 위해 민박을 하기도 한다.

독일인 남편 빌리 앵겔 프리드(74)와 함께 귀국한 우춘자(68)씨는 "맑은 공기와 남해의 멋진 풍광에 빠져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아무런 어려움이 없이 풍족한 생활을 했지만 나이가 들수록 내 고향,내 고국에 대한 향수가 더욱 강하게 밀려와 귀국했다고 했다.

독일 보쿰에서 살다 온 박미자(63)씨 역시 "독일에선 바다를 거의 보지 못하고 살았는데 고개만 들면 쪽빛 바다가 보여 하루 하루를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만족했다. 독일마을은 김두관 당시 군수가 독일을 방문했을때 "고국으로 돌아가려고 해도 집도 없고 터전도 없다"는 교포들의 하소연을 듣고 이 마을을 조성하게 됐다.

남해군은 2001년부터 약 3만평의 사유지를 사들여 택지를 조성해 평당 12만원에 독일 교포들에게 분양했다. 주민들은 남해군이 6억원을 들여 신축중인 마을회관이 완공되면 회관내에 독일어 라디오 방송국을 개설하고 소시지.빵.치즈.포도주 등 독일 음식을 수입해 팔 계획이다.방송기자재는 독일정부에서 제공하기로 했다. 부인 김우자(67)씨의 독일인 남편 루드빅(75)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여생을 남해에서 보낼 생각"이라며 "날씨와 인심이 좋고 자연이 아름다워 아주 행복하다"고 전했다.

김씨는 "스페인의 많은 마을들이 유럽의 연금 생활자 등을 유치해 부자 동네로 변했다"며 "우리 나라도 외국에 나가 있는 교포와 연금 생활자들을 데려오면 많은 외화를 벌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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