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박두거니 서마지기 무논에는
오늘밤도 기러기 떼가 날아오르는지요.
동네 사람들 모두 돌아간 뒤에도
우리 집 논에는 언제나 긴 그림자 부산거리고
기러기 떼는 산 밑에서 바다 쪽으로 날아오르고 있었지요.
팔에다 무명베 토시를 낀 누님이랑
명아주대처럼 취해 계시던 아버지랑
긴 논둑길을 따라 벼 낟가리를 헤아리던 나는
산그늘처럼 깊은 어둠 속에 서서 밤하늘을 바라보았지요.
어덩 밑에 풀 뜯던 송아지의 워낭 소리 짤랑거리고
분둣골 제각에 남폿불이 깜박거릴 때
우리 집 논에는 푸짐하게 내리던 달빛이 있었습니다.
제금을 나와 처음으로 장만했다는 서머지기 논에는
논벌보다 깊은 희망이 있었고
신명이 든 나는 줄지어 달리며
벼 낟가리를 몇 번이고 헤아리며 셈을 하였지요.
바다에서 산 밑으로 다시 기러기 떼가 날아오르자
긴 한숨을 내쉬던 아버지가
언젠가는 우리도 저 새들처럼
먼곳으로 날아갈 것이라고 하였지요.
어머니
지금도 서마지기 무논에는 그해처럼
기러기 떼가 날아오르는지요.
내 마음 속에는 지금도
무서리가 내리던
그날의 푸르스름한 달밤이 있습니다.
이형권
Orla Fallon - Down By Sally Garde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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