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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내게’너는 사람으로서 살 가치가 있느냐’고 묻는 것 같군요. 정말 냉정하네요.”
2m×3m의 좁은 방에서 그는 상체를 모로 들어 나를 올려다봤다. 척추결핵으로 뼈와 살이 말라붙은 하체는 담요 속으로 숨었다. 머리맡에는 펜과 연필들이 담긴 통, 잉크, 화판, 작업중 통증을 완화해줄 물파스가 놓여있었다.
방 안에서 40년 동안을 엎드려 지내온 만화가 지현곤(46)씨는“살아있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많은가?”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굵은 안경테를 만지작거렸다.
“그전에 찾아오신 분들은 제가 장애인이라서 단순히 동정심으로 대했는데, 오늘 질문은 감당이 안 되네요. 보통 사람들은 가족을 먹여 살리거나 자기의 부(富), 출세, 명예를 위해서 뭐든 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제 마음속에는 염세(厭世)와 어두움이 있었지요. 그 돌파구가 카툰(cartoon: 한컷짜리 풍자만화)이 됐던 거네요. 물론 이것을 목표로 삼았던 적은 없었어요. 은연중에 물방울이 낮은 곳으로 흐르듯이, 그냥 물 흐르는 대로 가다 보니까, 종착역이 만화가 되지 않았나 싶거든요.”
남산 서울애니메이션센터에서는 그의 생애 첫 카툰 작품전이 열리는데, 그는 마산의 경남대학교 정문 옆 골목으로 들어간 후미진 주택 2층 단칸방에서 엎드려 있는 것이다. 평자(評者)들은 그의 작품에 대해 “전혀 배우지 못한 사람이 이 경지에 오른 것은 불가사의”라고 말했다. 그의 학력은 초등학교 1학년 1학기가 끝이다. 그 뒤로 지금까지 그는 방에서만 지내왔다.
“그때 방학이 되니까 허리에 신경마비가 와서, 칠팔십 된 할머니 할아버지처럼 힘이 없어지더라고요. 그냥 개인의 불행이지 사회의 책임이나 의무는 없을 때지요. 다들 먹고살기 바쁜 시절이었으니까요. 그렇게 된 아이가 달리 무얼 할 수 있겠습니까. 동생을 시켜 만화방에서 만화를 빌려보면서 그걸 따라서 끼적거렸네요. 사람이라는 게 친숙한 것에 익숙해지지 않습니까. 그 이상의 것은 없고요. 배운 것도 없어요. 제게 철학이 어떻고 전문적인 걸 원한다면 잘못 찾아오신 겁니다. 그러면 저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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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김용우 기자 yw-kim@chosun.com
방 안은 더웠다. 그는 하얀 스틱으로 툭 쳐서 선풍기의 풍력조절을 ‘미풍’에서 ‘약풍’으로 맞추었다. 낯선 사람에게 자신의 일상 행동이 들켰다는 생각 때문인지, “실례인 줄 알지만”이라며 웃었다.
―이렇게 엎드려서 늘 꿈꾸는 것이 무엇입니까?
“공상을 많이 하지요. 희한하게도 꿈을 꿔도 만화처럼 앞뒤가 안 맞는 꿈만 꾸게 돼요. 그걸 딱히 뭐라고 말하기가 그러네요.”
―내가 움직였으면 좋겠다, 세상의 거리로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꿈은 꾸지 않습니까?
“누군가는 황우석 그분의 방법으로 치료될 수 있지 않으냐고 하셨는데, 그건 몰라서 하시는 말씀이지요. 가수 강원래라는 분처럼 신체가 건강하다가 갑자기 다친 분들에게는 기적 같은 치료법이 있다면 단번에 털고 일어날지도 모르죠. 제 경우는 하체가 40년 동안 고철로 있었어요. 살점이 없어 뼈와 가죽이 그냥 하나처럼 붙어 있어요. 그런 상태에서 신경이 돌아온다고 멀쩡하게 걸어다닐 수 있겠습니까. 걸어다니는 그런 공상은 어렸을 때라면 모르겠는데 이미 정리가 된 거네요. 만약 이렇지 않았다면 나는 어떠했을까, 그런 물음은 아무 의미가 없어요. 만약이 현실로 된다면 만약을 꿈꿀 수 있지만, 제게는 만약이 현실로 될 수 없는 거네요.”
―모든 꿈과 욕망을 체념한 건가요?
“굳이 따지면 늙은 노모가 40년 넘게 해주는 음식을 먹으면서 사는 것으로부터 독립을 했으면 하는 마음은 있네요. 지금보다 좀 더 넓은 방에서 지냈으면 하는 현실적인 꿈은 있어요. 이 방도 처음에는 더 작았으나 조금 늘린 것이거든요. 많이 나아졌는데도, 사람이 늙어가니 답답증이 생기네요.”
그는 열린 방문으로 보이는 아파트 단지를 가리켰다.
“처음 저 건물이 지어질 때, 한 층 한 층 올라갈 때마다, 제 시야를 가리니까 싫었어요. 하지만 제가 싫다고 해서 올라갈 건물이 멈추지는 않을 것이고요. 그러려니 했는데, 어느 날부터 그 건물이 동경의 대상이 되더라고요. 그렇게 큰 집도 아니니까, 제가 욕심 내도 너무 심한 것은 아니다 싶고요. 방이 좀 더 넓으면 이리저리 뒹굴면서 몸에 힘이라도 키우겠는데…. 제가 사는 집은 북동향이지요. ‘남쪽으로 난 창(窓)이 있으면 일 년 내내 달을 바라볼 수 있겠구나’라는 바람도 있어요. 겨울에만 이쪽 방향으로 달이 떠요. 하지만 남쪽으로 창이 나있으면 봄 여름 가을까지 달을 볼 수가 있어요. 달이 낮게 뜨면서 남쪽을 지나가거든요.”
- ▲ 지현곤의 카툰 '맛보기'… 병사의 철모 위에 핀 꽃으로 군인들의 시선이 쏠린다. 물을 부어주는 병사의 눈빛에 작가의 마음이 담겼다.
―하필 달이 왜 보고 싶습니까?
“글쎄요. 해는 눈이 부셔 볼 수 없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도시에서 반짝이는 별을 보기도 힘들고요.”
나는 상체를 비스듬히 기울여 방문을 쳐다봤다. 그가 엎드려서 볼 수 있는 것이야말로 우뚝 선 아파트와 창공의 달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달을 보고 있으면 어떤 기분이 듭니까?
“만월이었다가 줄어들고 없어지고, 그런 달의 변화를 보면 제 생활에 변화가 없어서인지 좋더라고요. 일반 사람들은 웬만한 관심을 가져도 달을 보고서 ‘아, 좋다’고 하는 이는 드물지만, 그런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그대 일상에 평범한 게 다른 사람에게는 소중한 것’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평범한 것을 귀하게 여기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지난 겨울에는 만화 그리는 일을 멈추고 그냥 방문을 열어 놓고 밤새 달만 쳐다봤어요. 이 방문을 통해서는 겨울에만 달이 보이니까요. 마냥 자유롭고 편안한 느낌이 들어요.”
그는 간신히 몸을 틀어 상자 속에서 디지털카메라를 꺼냈다. 카메라 액정 속에는 달 사진들이 들어있었다.
망원렌즈가 없어, 쌍안경을 구해가지고 카메라렌즈에 연결해 찍었네요. 수십억, 수백억원을 들여서 하늘에 떠있는 달에 며칠간 머무는 호사를 누리는 사람들도 있다는데, 저도 만약 그런 금전적 여유가 있었더라면 꼭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 ▲ 지현곤의 카툰 '맛보기'… TV가 인간을 지배하는 시대. 리모콘이 움직이고 있는 것은 바로 당신이다.
―마지막으로 집 밖 외출을 해본 것이 언제였습니까?
“초등학교 1학년 때지요. 국립 마산 결핵병원 부설 저소득층 수용 병실이 있었는데, 거기서 몇 달 입원해있다가 온 적이 있었지요. 그때 운전하시는 분이 마산 시내를 한 바퀴 빙 돌더라고요. 아이스크림도 하나 사서 같이 먹고요. 왜 그러냐 했더니, 그때는 잘 몰랐는데,’이 분들이 내가 앞으로 바깥 출입이 어려울 것 같으니까 마지막으로 시내를 보여준 거구나’라고 깨닫게 됐네요.”
―40년 동안 방 안에서만 있었으니 지금 바깥 세상이 어떻게 바뀌었을지 궁금하지 않나요?
“TV가 얼마간 사실을 왜곡하고 순화를 해도, 그래도 세상 모습을 알려주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것을 통해서만 접하니, 제가 그리는 만화도 정확한 사실을 묘사하지는 못해요. 제가 만화공모전에 여러 차례 입상을 하니, 어떤 신문사에서 만평을 그려달라고 제안이 왔어요. 현장에 갈 수 없는 제가 그걸 담당할 수 없지요. 제 한계를 제가 알거든요.”
방문 왼쪽에 낡은 12인치 TV가 대각선으로 놓여있었다.
“외부로부터의 자극이 필요해서 TV를 틀어놓아요. 다른 사람은 일상에서 안 볼 때는 끄지만 제 경우에는 안 봐도 켜놓아요. 어느 순간 연예인들이 나오는 프로나 드라마는 잘 안 봐요. 그런 걸 보는 까닭은 대리충족 때문인데, 제게는 전혀 다가오지 않아요. 해와 달, 별, 우주창조 같은 다큐멘터리가 나오면 꼭 보네요. 일부러 녹화까지 해서 보관하는 것도 있고요.”
―이번 작품전에 주인공인 당신을 모셔가려고 주최 측에서 휠체어와 차까지 준비를 했는데, 끝까지 이 골방 안에서 버텼지요. 서울 구경을 한번 해봐야겠다는 욕망이 없었습니까?
“그러기에는 최소한의 내 프라이버시를 지키고 싶었어요. 젊은 사람들이면 그게 가능하겠는데, 나이 든 늙은 사람의 고집을 꺾기는 쉽지 않아요.”
한 살 연상인 내가 “늙은 사람의 고집이라…”라고 중얼거리니, 그는 “마흔일곱이 무슨 나이가 많으냐고 하면 할 말은 없는데”라고 했다가, “그게 제 한계일거예요”라고 덧붙였다.
- ▲ 지현곤의 카툰 '맛보기'… 가슴 크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 그녀. 겨드랑이에 붙은 다이얼로 조절한다. 인공 성형은 누굴 위한 즐거움인가.
―무슨 한계를 말하는 겁니까?
“외부에 대한 공황장애일 수도 있고, 공포증일 수도 있겠네요. 방 안에서 늘 혼자 살아왔으니까요. 어쩌면 온실에 갇힌 화초일 수도 있고요. 이번 행사 때 제가 와주면 몇 백%의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데, 못 가는 이유가 대 소변 문제 때문입니다. 수십 년간 제 혼자 힘으로 그걸 해결해왔어요. 다른 사람이 보는 앞에서 그렇게 하고 싶거나 도움을 받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참 별나다. 까다로운 성격이네’ 하실 수 있겠지만, 그래도 제가 바꿀 수가 없네요. 그건 제가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존엄성을 지키는 것이거든요.
방 안에 화장실이 딸려 있어 씻는 것도 제가 씻어요. 머리도 제 손으로 깎아요. 제 머리가 짧은 이유는 취향이 그래서가 아니라, 신장이 안 좋으면 몸 속에서 열이 생겨 머리가 조금만 자라도 머릿속이 화끈거려 제 스스로 밀어버려요. 앞부분은 그런대로 깎지만, 뒷부분은 깎고 나면 오톨도톨합니다.”
―육체적으로 멀쩡한 사람들이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뉴스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들지요?
“정신적으로 고통이 있고 피폐해져서 그런 면이 있겠지만요. 어떻게 들릴지 모르나, 육체가 성한 사람들이 자살할 때, 저는 그 육체가 참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에게는 그런 육체조차 염원의 대상이잖아요. 장애인들은 옥상 꼭대기에 올라가서 뛰어내리려고 해도, 그렇게 올라갈 힘이 없는 사람들이거든요.”
―엎드려 작업을 하면, 무엇이 가장 불편합니까?
“처음 물파스를 어디다 쓰느냐고 물으셨는데, 이렇게 엎드려 목 부위를 딱 세우고 있으면 쉽게 관절통이 오거든요. 늘 약을 먹어도 온 전신 마디마디가 아프지요. 그래서 제 작업량이 한 달에 카툰 두 장을 그리면 많이 그립니다. 펜으로 가는 선을 빡빡하게 집어넣어 그리는 작업이기도 하지만요. 다른 사람들은 갖가지 도구나 방법을 이용해 자기가 원하는 표현을 합니다만, 저는 좁은 방에서 십수 년 동안 펜과 연필로만 그려왔거든요. 그전까지는 사람도 찾아오지 않으니 종일 이것만 하다가 졸리면 자곤 했어요. 제가 그린 카툰이 공모전 대회에서 몇 번 입상을 하니 기자들이 찾아왔어요. 처음에는 방어적이었고 좀 두렵기도 했어요.”
―하루 종일 아무 대화상대가 없을 때도 있습니까?
“칠순이 넘은 노모가 계시지만 늘 혼자 있거든요. 조카 애들이 놀러 올 때나 대화를 나눌 수 있지요. 어렸을 때는 ‘삼촌, 삼촌’하면서 따르던 아이들이 머리가 크니까, 또 자기 생활이 있으니까 저를 안 쳐다보는 일상이 돼버렸어요. 가족들도 하나같이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거든요. 그런 것에 연민이 들고, 그러면서 무심한 가족들에 대한 서운함도 있고….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는 이런 것에 대해 신경을 안 쓰네요.”
- ▲ 지현곤의 카툰 '맛보기'… 방주에 탄 노아가 마른 땅을 확인하려고 비둘기를 날려보낸다. 그 밑에 가라앉은 수많은 침몰선과 퇴적물들. 작가 지현곤씨가 자신의 최고작으로 꼽는 카툰이다.
―‘나는 왜 이렇게 되었느냐’며 자신의 운명에 대한 분노를 어떻게 감당했지요?
“운명에 대한 분노도 솔직히 힘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네요. 어렸을 때는 그랬죠. 왜 내가 여기 있어야 되느냐고, 다른 아이들은 학교 가고 소풍 가는데 왜 나만 여기서 가만히 누워있어야 하냐고, 그런 생각은 분명히 있었죠. 그 분노를 삭이는 방법으로서 만화가 거의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죠.
옛날 어른들 말씀대로 ‘내버려두라, 나이 들면 철든다’라고. 그렇게 세월이 가면서 저 자신을 추스르게 되더라고요. 분노를 표출하는 것 자체가 어쩌면 하나의 미성숙한 인격체의 표현이지요. 어느 순간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제 삶이 왜 다른 사람에게 짐이 되게 했느냐고. 제가 어머님께 짐이 되고 있는 그 이유 때문에 제 분노를 굳이 표현하지 않고 모든 걸 자제하고 제 내면에 감춰 두어요. 제가 배우지 못했지만 최소한의 인격은 형성 되었다고 느껴지거든요. 가끔 자다가 깨어나 저 자신을 향한 분노가 솟구칠 때도 있지만, 그것은 화산은 화산인데 김 빠진 화산처럼 잠깐 연기를 뿜었다가 그대로 사그라지죠.”
―곁에 같이 있어주는 여성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은 없습니까?
“타인과 함께 생활한다는 것 자체가 두렵기도 해요. 제가 이런 말 하면 안 되지만, TV를 보면 연예인들이 ‘저희 결혼했어요. 잘 먹고 잘 살아요’라고 며칠 혹은 몇 달 간격으로 나오거든요. 그걸 보고 ‘참, 샘나네. 정말 잘 사네’라고 생각하는데, 어느 날 한 순간에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느니 해요. 이는 인간적으로 두 사람이 한 사람이 되는 것이 힘들다는 이야기죠. 그런 면에서 저는 제 자신이 과연 성숙했는가, 두 사람이 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을 만한 그런 여건과 정신적 성숙이 되어 있는가, 그런 것을 묻는다면 도저히 ‘예’라고는 말할 자신이 없네요.”
―초등학교 교육도 못 받고 그 뒤로 쭉 방안에서 혼자 지내왔는데, 어떻게 이런 언어를 구사하는지 솔직히 놀랍습니다.
“더 이상 물으면 제가 말문이 막히는데, 굳이 말을 하자면, 어릴 때 그림은 이해가 되는데 글은 제가 모르겠어요. 글까지 안다면 그림을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글을 읽고 싶다는 욕구가 들었어요. 제가 똑똑했더라면 초등학교 1학기 다닐 동안 글을 깨우칠 수도 있겠는데. 요즘에는 대부분 글을 깨우치고 초등학교 입학을 합니다만. 누가 그 당시에 저를 위해서 글을 깨우쳐 줄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어느 순간 그런 욕망 때문에 글이 보이더라고요. 이건 ‘낫 놓고 기역’이고, 저건 이것이다라는 식으로 글이 술술 읽혀지더라고요. 그러면서 눈에 띄는 모든 책을 읽었지요. 그때 나이로서는 이해가 안 되는 일제 시대 때의 소설과 대하소설, 외국소설도 읽은 기억이 나요. 바깥에 나갈 수가 없으니까 어떻게든 읽어야 되겠다는 생각만 들었어요. 그런 식으로 습득을 해나갔지요.
진정 미쳐버리거나 완전히 바보가 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는데. 저는 미치지도 않고 그렇다고 그냥 단순한 사람도 아닌 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네요. 그게 말씀하신 대로 저의 운명의 한 형체가 되어버리는 거죠. 어느 정도는 타고난 것일 수도 있고요.”
―먹는 욕망은 강하지 않나요?
“제가 신장이 아주 안 좋아요. 단백질 음식을 섭취하면 신장이 거기서 걸러가지고 몸 속으로 영양소로 보내야 하는데, 그것을 보내지 못하고 연한 쌀뜨물처럼 흘러 보냅니다. 가만히 누워지내는 생활로 인한 후유증일 수도 있는데, 하루에 두 끼를 못 먹어요. 지금도 배가 고프지만 음식을 참아요. 먹고 나면 결과가 안 좋으니까요. 욕망을 따라가면 고통이 있으니, 그걸 알고 있으면, 욕망을 참을 줄 알아요.”
―현재 밥벌이는 됩니까?
“지금까지 수입이 없어요. 작품전을 열어준 분들이 오늘 서울서 내려오셔서 ‘꾸미지 말고 자신의 처지를 말해 사회 각계에 도움을 받는 쪽으로 해보자’고 하네요. 우리 사회에 먹고살기 힘든 사람이 저보다 많다는 것쯤은 저도 인지하고 있는데, 그러는 것은 철없는 아이가 부모한테 과자 사달라고 보채는 게 아닌가 그러네요.”
―앞으로 무엇이 되어 있을 것 같습니까?
“그건 모르네요. 계속 만화를 그려야지요.”
인터뷰가 끝난 뒤 선물을 해주고 싶다고 하자, 그는 한참 망설이다가“망원경, 값싼 걸로”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곧 자신을 자책했고, “이 말은 안 들었던 걸로 정말 해달라. ‘오프 더 레코드’(비보도)라는 것도 있지 않느냐”고 했다. 좁은 방문을 열어놓고 그는 망원경으로 좋아하는 달을 보고 싶은 것이다.지현곤씨는
생애 첫 작품전을 여는 카투니스트 지현곤(46)씨는 1961년 8월 경상남도 마산에서 출생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척추결핵에 걸려 이후 40년간 방안에서만 지냈다. “전혀 배우지 못한 사람이 이 경지에 오른 것은 불가사의”라는 평(評)을 받는다. 다음은 그의 주요 수상 경력.
▲1991년 5월 제3회 주간만화 신인만화 공모전 카툰 부분 가작
▲1995년 8월 제5회 국제서울만화전 대상·입선
▲1996년 12월 제3회 96운평만화대상 카툰 부분 우수상
▲2001년 9월 제10회 대전국제만화대상전 공로상
▲2006년 제15회 대전국제만화영상전 우수작가상
- ▲ A3(가로 29㎝x세로 42㎝) 크기로 그린 지현곤씨의 카툰 작품 중 하나. 둥지의 알이‘프라이’가 돼 버린 것을 보고 충격을 받은 어미 새를 그렸다.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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