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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강경, 옥녀봉

by 류.. 2017. 3. 24.


























              '…봄과 여름은 고기를 잡고 해초를 뜯느라 비린내가 포구에 넘치고, 토선(土船)과 딴장이, 당도리선들이

               황산(黃山)과 세도(世道)로 마주 나누어진 포구에 담처럼 둘러서서 꽹과리를 쳐댔고 화장(火匠)들이

               내뿜는 연기로 포구의 하늘은 다시 암회색 바다였다. 한 달에 여섯 번이나 열리는 장에는 전라도의

               곡식과 경강(京江)으로 가는 조곡과 화물이 포구에 쌓였다….'

               소설가 김주영이 '객주'에 그려놓은 강경 옛 장터의 모습이다. 시끌벅적한 장터 풍경이 선연하다. 강경은

               1920년대에 '1원산 2강경'이라 해서 전국 2대 포구였고, 해방 전까지 평양, 대구와 함께 3대 시장으로 꼽혔다.

                강경천을 낀 옛 장터거리에는 극장, 술집, 요정, 정미소, 젓갈집 등이 즐비했다.


           

                         이제 많은 것이 사라져 볼 것이라고는 낡은 일제시대 건물 몇 채와 쇠락해가는 젓갈시장 밖에는 없는 곳

                         예전에 비해 멋스러움이 사라져버린 반듯하기만한 금강 물줄기와 포구라는 명칭에 어울리는 것이라고는

                         황산대교 옆에 작은 등대 하나 달랑 남아있으나  아직도 해 넘어갈 무렵 옥녀봉에서 눈부시게 아름다운

                         노을을 볼 수 있는 곳..  사라져가는 것이 많을 때는 남아있는 것이 더욱 소중해진다

                         누군가는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으로 가야한다'고 했으나 마음 속에 뭔가 횡하니 바람이 불어올 때 나는

                         강경포구 옥녀봉을 오른다







        저물 무렵 그애와 나는 강둑에 앉아서
        강물이 사라지는 쪽 하늘 한 귀퉁이를 적시는
        노을을 자주 바라보곤 하였습니다
        둘 다 말도 없이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지만
        그애와 나는 저무는 세상의 한쪽을
        우리가 모두 차지한 듯 싶었습니다
        얼마나 아늑하고 평화로운 날들이었는지요
        오래오래 그렇게 앉아있다가 보면
        양쪽 볼이 까닭도 없이 화끈 달아오를 때도 있었는데
        그것이 처음에는 붉은 노을 때문인 줄로 알았습니다
        흘러가서는 되돌아 오지 않는 물소리가
        그 애와 내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이는 동안
        그애는 날이 갈수록 부쩍 말수가 줄어드는 것이었고
        나는 손 한번 잡아주지 못하는 자신이 안타까웠습니다
        다만 손가락으로 먼산의 어깨를 짚어가며
        강물이 적시고 갈 그 고장의 이름을 알려주는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자랑이었습니다
        강물이 끝나는 곳에 한 없이 펼쳐져 있을
        여태 한번도 가보지 못한 큰 바다를
        그애와 내가 건너야 할 다리같은 것으로 여기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때부터였습니다
        날마다 어둠도 빨리 왔습니다
        그애와 같이 살 수 있는 집이 있다면 하고 생각하며
        마을로 돌아오는 길은 늘 어찌나 쓸쓸하고 서럽던지
        가시에 찔린 듯 가슴이 따끔거리며 아팠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애와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입술을 포개었던 날이 있었습니다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애의 여린 숨소리를
        열 몇살 열 몇살 내 나이를 내가 알고 있는 산수공식을
        아아 모두 삼켜버릴 것만 같은 노을을 보았습니다
        저물 무렵 그애와 나는 강둑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때 우리가 세상을 물들이던 어린 노을일 줄을
        지금 생각하면 아주 조금 알 것도 같습니다
         




        -저물 무렵/안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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