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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일본의 걷고 싶은 길

by 류.. 2016. 9. 14.

 

 

 

 

 

 

매혹적이지만 치명적인 함정이 도사리고 있는 걷기 여행!


걷기 여행이 열풍이다. 공원에 운동하러 갈 때에도 공원까지 차를 타고 가고, 가까운 은행이나 마트에 갈 때에도 차를 타고 가는 생활에 익숙한 현대인들이 걷기 여행에 열광한다는 사실이 이율배반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미국인의 이혼 사유 목록을 보다가 '과도한 조깅'이라는 항목을 보고 빵 터진 적이 있는데, 편리를 추구하며 열심히 몸을 움직일 기회를 줄이고 있으면서도 또 애써 몸을 움직여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우리의 삶이 좀 애처롭기도 하다.

걷기 여행은 미친 속도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잠시 삐져나와 한껏 여유와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매혹적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얼마 전, 걷기 여행을 한 차례 시도한 나는 그것이 '고행'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몇 시간을 채 걷기도 전에 물집이 잡히고, 근육이 뭉치기 시작해, 나름 야심차게 준비했던 나의 걷기 여행 계획은 그렇게 반나절만에 접혔다. 그러나 걷기 여행을 중도에 포기한 이유가 체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걷기 여행은 여행지의 생경함과 아름다운 풍경을 '더 많이' 눈에 담으려는 조급함을 떨쳐버려야 한다. 걷는 속도만큼 느리게 흘러가는 여행지 풍경을 천!천!히! 음미하고 감상할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 그러니 난생 처음 가본 여행지 구석구석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탐색해보고 싶은 나의 조급함과 걷기 여행과 처음부터 궁합이 맞지 않았던 것이다.

2권으로 이루어진 <일본의 걷고 싶은 길>도 그런 우려가 먼저 생긴다. 체력과 여행 기간은 둘째 치고, 수록된 사진만으로도 충분히 매혹적인 이 길을 '다' 돌아보고 싶은 나의 조급함이 걷는 속도를 견뎌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 일본의 걷고 싶은 길> 첫 권은 "일본 최북단의 섬 홋카이도와 가장 큰 섬 혼슈를 찾아간 이야기"이다. 저자는 잘 알려진 대도시보다 덜 알려진 곳들을 찾고 싶었고, 도시보다는 자연과 전통이 살아 있는 곳을 소개하고 싶었다고 전한다. 1권에서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일본이 이렇게 아름다운 섬 나라였나 하는 점이다. "길에서 여우나 사슴과 눈이 맞고, '곰 조심'이 일상인' 생태 환경이 감탄스럽다. 같은 초록인데, 어딘지 모르게 척박하게 느껴졌던 필리핀과 비교해보면 일본은 원시림마저 축복의 땅으로 느껴질 만큼 풍요롭고 아름다워 보인다. 세월의 흐름이 무색할 정도로 고풍스러운 풍경과 초록의 정경이 마음을 잡아끈다.

< 일본의 걷고 싶은 길> 두 번째 책은 시코구와 시코쿠보다 더 남쪽에 자리잡은 규슈와 오키나와의 이야기이다. "일본스러운 음산함"이 신비롭게 다가오는 두 번째 권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걷고 싶은 길'은 "1번 절부터 88번 절까지 번호가 매겨진 88개의 절을 따라가는 1200킬로미터의 불교 순례길"이다. 산티아고보다 더 길고 오래된 성지 순례길이라고 한다. 왕복 아홉 시간을 걸어야 만날 수 있는 7000년을 살아왔다는 조몬 삼나무까지, 다소 어두운 영적인 기운이 가득하다. "첨단 과학기술을 자랑하는 나라"라고는 믿지 않을 만큼 미신이 가득한 나라답다는 생각이 든다.

< 일본의 걷고 싶은 길>은 당장이라도 풍경 속으로 풍덩 빠져들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곳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걷기 여행은 풍경에 욕심을 내기보다 느리게 걸으며 '사색을 즐겨야' 제맛은 여행이다. 그런 점에서 일본은 "사색하기 좋은 지형"의 나라라는 것이 눈에 띈다.

1권에 보면, 교토 아이몬지 산(175-183)에 '철학의 길'이 소개된다. "주택가 한가운데 비와코수로를 따라 이어지는 2킬로미터 남짓한"(178) 이 길을 '철학의 길'이라고 부르는 것은 "교토 대학의 철학자인 나시다 기타로 교수가 이 길에서 산책을 즐겼기 때문"이란다. 노벨화학상을 받은 후쿠이 겐이치 교수도 이 길을 즐겨 걸었다고 하는데, 겐이치 교수는 노벨상 수상 비법을 이렇게 전수했다고 한다. "산책하면서 드는 생각을 메모하라. 사색하기 좋은, 경사가 약간 있는 길을 걸어라"(178). 교토 대학의 총장 역시 그 대학 출신의 자연과학자들이 다섯 명이나 노벨상을 수상한 비결을 묻자 '산책하기 좋은 지형'을 꼽았다고. 이렇게 보니, 참 탐나는 지형이다!  


낯설면서도 익숙한 것들 사이의 변주를 즐길 수 있는 곳!
"이 나라에서는 익명의 여행자로 머물고 싶다는 욕망도, 이방인으로서 눈길을 받고 싶은 욕망도 모두 채울 수 있다"(129).

일본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물어 보면, 대부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으로 두 가지를 꼽는다. 첫째는 맛있는 음식, 둘째는 친절한 사람들이다. <일본의 걷고 싶은 길>의 저자는 여기에 한 가지 매력을 더 보탠다. 여행지로서 일본이 지닌 특별한 묘리를 이렇게 표현한다(129-132). 낯설면서도 익숙한 것들 사이의 변주를 즐길 수 있는 곳, 여행지와 일상 사이의 간극을 오갈 수 있는 곳, 숨어들기와 드러내기를 조절할 수 있는 곳! 그 느낌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 아마도 단동을 여행할 때 조선족과 함께했던 그 편안함과 닮아 있을 듯 하다.

"이 나라를 여행하는 일은 여행과 일상 사이에 머무는 것 같다. 이곳에서 나는 이방인이 아니다. 내 생김새가 이곳 사람들과 똑같기에 사람들은 내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 어쩌면 이 나라는 누구의 관심도 받지 않고 완벽하게 익명의 존재로 남을 수 있는 곳인지도 모른다. 이곳은 음식도, 정서도 우리와 비슷하다. 그래서 여행을 떠나와도 익숙한 것들과 완전히 결별해야 하는 부담이 없다. 단지 내가 떠나온 곳보다 작게 말하고, 좀 더 자주 '미안합니다', '실례합니다'를 말해야 한다는 점이 다를 뿐"(129). 그러면서도 동시에 "배용준과 이병헌의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도 환대와 관심을 받을 수 있는 나라"이다.

미래인에서 출간한 <일본의 걷고 싶은 길>은 일본의 아름다운 풍경만큼이나 그것을 담아낸 책이 예쁘다. 그래서 더 일본 여행에 끌리는지 모르겠다. 이 예쁜 책과 함께, 이야기를 시작하는 책의 첫 장에 인용된 명언 하나가 잔잔한 내 마음을 자꾸만 들쑤신다.

"삶이란 절제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모험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다"(노엘 베스페르) (펀글)

 

 

 

 

시코쿠 도쿠시마 오헨로 순례자의 길(四国 徳島,お遍路)

 

 

교토 철학의 길(데츠가쿠노미치,哲学の道)

 

 

오키나와 나하시, 슈리 긴죠초 이시다타미미치(首里 金城町石疊道)

 

 

나가노 현의 쓰마고주쿠(妻籠宿)

 

 

닛코국립공원 센죠가하라(戦場ヶ原)

   花も嵐も- 山本譲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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