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먹고 잠깐 나가본 두계천..
한낮에도 전혀 덥게 느껴지지 않는다는게 신기하다
이젠 정말 가을인가!
바람이라 이름한다.
이미 사라지고 없는 것들,
무엇이라 호명(呼名)해도 다시는 대답하지 않을 것들을 향해
이제 바람이라 불러본다.
바람이여.
내 귀를 멀게 했던 그 가녀린 음성,
격정의 회오리로 몰아쳐와 내 가슴을 울게 했던 그
젖은 목소리는 지금 어디 있는가.
때로는 산들바람에, 때로는 돌개바람에, 아니
때로는 거친 폭풍에 실려
아득히 지평선을 타고 넘던 너의 적막한 뒷모습 그리고
애잔한 범종(梵鐘)소리, 낙엽소리, 내 귀를 난타하던 피아노 건반
그 광상곡(狂想曲)의 긴 여운.
어느 먼 변경 척박한 들녘에 뿌리내려
민들레, 쑥부쟁이, 개망초 아니면 씀바퀴 꽃으로 피어났는가.
말해다오.
강물이라 이름한다.
이미 잊혀진 것들,
그래서 무엇이라 아예 호명조차 할 수 없는 것들을 향해
이제 강물이라 불러본다.
강물이여,
한 때 내눈을 멀게 했던 네 뜨거운 시선,
열망의 타오르는 불꽃으로 내 육신을 황홀하게 달구던 그 눈빛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때로는 여울에, 때로는 급류에, 아니 때로는
도도히 밀려가는 홍수에 실려
아득히 수평선을 가물가물 넘어가던 너의
쓸쓸한 이마. 그리고
어디선가 꽃잎이 지는 소리, 파도소리, 철썩이는 잔 물결의 여운.
어느 먼 외방의 썰렁한 갯벌에 떠밀려
뭍을 향해 언제나 귀를 쫑긋 열고 살아야만 하는가.
해파리, 민조개, 백합아니
온종일 휘파람으로 울다 지친 소라
말해다오.
구름이라 이름한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것들,
무엇이라 호명해도 다시 이룰 수 없는 형상들을 향해 나는
이제 구름이라 불러본다.
구름이여,
한 때 내 맑은 영혼의 하늘에 푸른 그늘을 드리우던
오색 빛 채운(彩雲)
그 빛나던 무지개는 지금 어디 있는가.
때로는 별빛에 실려, 달빛, 아니 어스름한 어느 저녁 답,
스러지는 한 조각 노을에 실려
아득히 먼 허공으로 희부옇게 사라지던 너의 그
두 빈 어깨 그리고
어디선가 내리치는 마른번개, 스산하게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
잔기침 소리
어느 먼 이역의 하늘로 불려가
흩뿌리는 싸락눈, 진눈깨비 아니
동토(凍土)에 떨어져 나뒹구는 우박이 되었는가.
말해다오.
너를 찾는다. 바람이라는 이름으로
강물이라는, 구름이라는 이름으로
너를 부른다.
해 저무는 가을 저녁
찰랑대는 강가의 시든 풀밭에 홀로
망연히 앉아.
-너를 찾는다/오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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