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 고택 나들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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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에서 만끽하는 옛 시절의 여유
청송하면 주왕산과 주산지가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한가위를 맞아 이번 주에는 이들 명소를 제쳐두고 좀 더 색다른 경험을 위해 청송을 찾는다. 이름하여 ‘고택에서의 하룻밤’.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보다 진득하니 고택에서 묵으며 옛 시절의 여유를 한껏 느껴보는 특별한 여행이다.
경북 청송은 양반고을 안동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심심산골이다. 이웃해서일까. 청송에는 안동처럼 유서 깊은 고택이 많다. 그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파천면 덕천리의 송소고택이다. 덕천리는 청송 심씨가 모여 하나의 촌락을 이룬 마을로 지난 6월 국제슬로시티로 인정받은 곳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0번째로 지정된 슬로시티다. 이 마을은 조선 영조 때 만석지기의 부를 누린 심처대의 7대손 송소 심호택이 옮겨오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현재도 마을에 사는 주민 중에서 열에 아홉은 청송 심씨로 집성촌의 틀을 잘 유지하고 있다. 송소고택은 99칸의 대갓집으로 1880년 경에 지어졌다. 정면 일곱 칸 규모의 행랑채에 설치된 솟을대문으로 들어서면 담벼락을 사이에 두고 큰 사랑채와 작은 사랑채가 맞붙어 있다. 안채는 그 뒤편에 가로 놓여 있다. 왼쪽으로는 별채가 안담 밖에 앉아 있다. 총 두 채로 하나는 대문채이고, 다른 하나는 별당이다. 사랑채와 안채는 전체적으로 ‘ㅁ’자 형태를 띠고 있다. 모든 건물마다 별도의 마당을 가지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전형적인 상류주택의 특징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송소고택은 2005년부터 한옥체험공간을 운영해오고 있다. 모두 12개의 방을 말끔히 단장해 손님들에게 내놓고 있다. 송소고택은 하나의 쉼터이기 이전에 여행지다. 둘러볼 거리가 워낙 많다. 집 구석구석 옛 물건이 자리하고 있다. 안채 우물 옆에는 사람보다 큰 쌀독이 있고, 큰사랑채의 대청에는 오래된 서장이 있다. 오늘날의 책장과 같은 것이다. 솟을대문의 손잡이는 여태 한 번도 갈지 않은 것이다. 못질을 전혀 하지 않고도 130년 세월을 버텨냈다. 조상들의 기술이 얼마나 뛰어난지 새삼 느끼게 된다. 안채 뒤편에는 장독대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뒤뜰로 통하는 길목이다. 뒤뜰은 앞마당처럼 넓다. 감나무 몇 그루가 서 있다. 너무 늙어 기운이 없는 탓인지 계속 붙들고 있는 열매보다 땅바닥에 떨어뜨린 열매가 더 많다. 송소고택에서는 밤이 되면 장작을 지펴 온돌을 데운다. 산골이라 그런지 추위가 일찍 찾아왔다. 아랫목에 이불을 깔고 누워 있노라면 행복이 먼 데 있지 않음을 알게 된다. 송소고택에는 어떤 방을 막론하고 TV가 없다. 옛날로 시간을 돌려놓고 TV를 찾는 것이야말로 이상한 일이다. 그러나 버릇처럼 켜두었던 TV가 없으니 좀체 적응이 되지 않는다. 조용한 시간이 어색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해진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함께 온 가족과 대화가 살아난다. 심심한 오늘의 여행이 화제가 되기도 하고, 서로의 고민거리가 도마 위에 오르기도 한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어느새 깊어지는 밤. 귀뚜라미 소리를 자장가 삼아 깊은 잠을 청한다.
이곳 덕천리에는 송소고택 외에도 송정고택, 찰방공종택, 창실고택 등 물려 준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는 고택들이 있다. 송정고택은 송소 심호택의 둘째 아들 송정 심상광이 기거했던 곳이다. 송소고택 왼편에 자리하고 있는데, 서로 담장이 트여 있다. 지어진 지 약 100년이 된 고택으로 송소고택에 비해서는 규모가 작다. 이곳 사랑채는 독립운동가로 활약하고 훗날 국방장관까지 역임한 이범석 장군이 한 달 넘게 묵었던 곳이다. 그가 남긴 편액이 사랑채 벽에 걸려 있다.
찰방공종택은 청송 심씨 약은공의 9세손 찰방공 심당의 종택이다. 1933년 지어진 이 집은 송소고택 오른편에 담장을 사이에 두고 있다. 규모가 송정고택보다 더 아담하다. 창실고택은 심호택이 1917년 분가한 동생에게 지어준 집이다. 송정고택과 찰방공종택, 창실고택에서도 송소고택처럼 한옥체험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청송에는 덕천리 외에도 고택마을이 하나 더 있다. 파천면 중평리다. 덕천리에서 자동차로 약 4㎞ 떨어져 있다. 이곳에는 사남고택과 서벽고택이 있다. 중평리는 평산 신씨 집성촌이다. 마을 초입에 송림이 우거져 있다. 사남고택과 서벽고택은 한옥체험형 고택으로 한창 단장 중이다. 덕천리에서 중평리까지는 외씨버선길로도 연결돼 있다. 외씨버선길은 청송-영양-봉화-영월의 마을과 산을 이은 길이다. 총 170㎞ 길이의 생태문화탐방로로서 현재는 청송 11.5㎞, 영양 8.3㎞, 봉화 17.6㎞, 영월 10.4㎞가 완성돼 있다. 한편, 청송에서는 강원도의 방아다리나 오색 못지않은 약수가 솟아난다. 달기약수와 신촌약수가 그것이다. 둘 다 똑같은 성분의 약수다. 특히 신촌약수는 어느 한 군데서 솟아나는 것이 아니고 진보면 신촌동 마을 집집마다 수돗물처럼 나온다. 위장병과 신경통, 빈혈, 만성부인병 등에 특효다. 철분이 다량 함유된 이 약수로 밥을 지으면 빛깔이 푸르고 윤이 나며 찰기가 있다. 덕천리에서 중평리를 지나 신촌약수 찾아가는 길에는 사과나무밭이 끊임없이 펼쳐진다. 붉은 사과가 주렁주렁 달린 모습을 보면 마음까지 풍성해진다. 참, 사과수확을 하는 곳이 있다면 반드시 자동차를 세울 일이다. 시중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더욱 싱싱한 사과를 구입할 수 있다. 김동옥 여행전문 프리랜서 tour@ilyo.co.kr 여행안내 ▲길잡이: 새로 개통된 상주/영덕 고속도로 영덕IC로 나가서→덕천마을.
창실고택 |
송정고택
옛집은 누구에게나 다 있네. 있지 않으면 그곳으로 향하는 비포장 길이라도
남아 있네. 팽나무가 멀리까지 마중 나오고, 코스모스가 양옆으로 길게 도열해
있는 길. 그 길에는 다리, 개울, 언덕, 앵두나무 등이 연결되어 있어서 길을
잡아당기면 고구마 줄기처럼 이것들이 줄줄이 매달려 나오네.
문패는 허름하게 변해 있고, 울타리는 아주 초라하게 쓰러져 있어야만 옛집이
아름답게 보인다네. 거기에는 잔주름 같은 거미줄과 무성한 세월, 잡초들도 언
제나 제 목소리보다 더 크게 자리 잡고 있어서 이를 조용히 걷어내고 있으면
옛날이 훨씬 더 선명하게 보인다네. 그 시절의 장독대, 창문, 뒤란, 웃음소리....
그러나 다시는 수리할 수 없고, 돌아갈 수도 없는 집. 눈이 내리면 더욱 그리워
지는 집. 그리운 옛집.
김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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