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風景

완도, 정도리 구계등

by 류.. 2015. 7. 18.

 

 

 

 

 

마음이 후박나무 그늘처럼 어두운 날이면
바람처럼 기별도 없이 훌쩍 정도리에 간다
모난 돌 하나 없는 동글동글한 몽돌들
서로 등을 맞대고 앉아 참선 중이다
적막한 바다에 쏴르르 쏴르르 돌 구르는 소리
각진 마음이 자꾸 늑골 사이에서 삐걱거린다
세상에 잊지 못할 정이 깊으면 돌이 되는 걸까
정도리 바닷가에 앉아 죽은 동생을 생각하는 동안
생각이란 생生에 각角을 세우는 일만 같아
묵언 중인 몽돌 밭에 앉아 마음의 각을 자른다
한세상 구르다 보면 돌도 저리 무디어지는 것을,
무심한 바다에 부질없는 돌팔매질만 하다
돌아서는 등 뒤에서 내 가슴보다 더 막막한
바위를 치며 우는 파도가 묻는다
이 세상천지에 너만 한 슬픔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고
네 어머니의 한 생애도 슬픔의 바다였느니
죄 없는 아들이 어디 있느냐고
그렇게 파도 소리로 울다 온 한나절
내 마음속에도 슬픔의 몽돌 하나 들어앉았다

 

 

 

-김경윤,정도리 바닷가에서의 한나절

 

 

 

  


'정도리 바닷가엔 모래가 한 점도 없어요.

청환석(靑丸石)이라고 해서 푸른 돌들이 해안을 따라 죽 깔려 있죠.

해안선이라고 해 봐야 기껏 7백 미터 밖엔 안 되지만

돌밭이 바닷속으로 아홉 고랑을 이뤄  내려가 있다고 하니 장관인 셈이죠.

그래서 구계등이라고 부르는 겁니다.'(윤대녕의 소설  '천지간' 중에서)

 


 

 

 

윤대녕의 '천지간' 줄거리 


나는 외숙모의 부음을 받고 문상 가는 길에 우연히 죽음의 긴 그림자를 끌고 다니는 한 여인을 보게 된다.

나는 자신도 모르게 그녀에게 드리운 사영(死影)을 따라 목적지와 무관한 완도 바닷가 구계등까지 와버린다.

도중에 돌아갈까 몇 번이고 마음먹었지만 어릴 때 기억 하나가 발걸음을 돌리지 못 하게 막았다.

나도 어릴 때 물에 빠져 죽을 뻔한 일이 있었는데 친구가 나를 구하고 대신 죽은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완도의 구계횟집에서 마침내 그녀의 사연을 듣게 된다. 그녀는 이곳에서 애인의 아이를 임신하게 되었으나

애인이 변심하고 떠나 버려 절망한 나머지, 추억이 깃든 이 바닷가에 몸을 던지기 위해 왔다는 것이다.

나는 그녀와의 하룻밤을 통해 그녀의 생명을 살리지만 그 순간에 소리하는 여인 하나가 동백꽃(득음)을 보지 못 한 채

구계등 바닷가에 몸을 던지게 됨으로써 천지간에 생명이 들고나는 자취는 고르게 되어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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