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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저녁이 있다

by 류.. 2010. 9. 12.

 

 

 

  


          저물 무렵
          무심히 어른거리는 개천의 물무늬에
          하늘 한구석 뒤엉킨 하루살이떼의
          마지막 혼돈이며
          어떤 날은 감히 그런 걸 바라보려 한다

          뜨거웠던 대지가 몸을 식히는 소리며
          바람이 푸른 빛으로 지나가는 소리며
          둑방의 꽃들이 차마 입을 다무는 소리며
          어떤 날은 감히 그런 걸 들으려 한다

          어둠이 빛을 지우며 내게로 오는 동안
          나무의 나이테를 내 속에도 둥글게 새겨넣으며
          가만 가만히 거기 서 있으려 한다

          내 몸을 빠져나가지 못한 어둠 하나
          옹이로 박힐 때까지 예전의 그 길,
          이제는 끊어져 무성해진 수풀더미 앞에
          하냥 서 있고 싶은 그런 저녁이 있다



          나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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