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 무렵
무심히 어른거리는 개천의 물무늬에
하늘 한구석 뒤엉킨 하루살이떼의
마지막 혼돈이며
어떤 날은 감히 그런 걸 바라보려 한다
뜨거웠던 대지가 몸을 식히는 소리며
바람이 푸른 빛으로 지나가는 소리며
둑방의 꽃들이 차마 입을 다무는 소리며
어떤 날은 감히 그런 걸 들으려 한다
어둠이 빛을 지우며 내게로 오는 동안
나무의 나이테를 내 속에도 둥글게 새겨넣으며
가만 가만히 거기 서 있으려 한다
내 몸을 빠져나가지 못한 어둠 하나
옹이로 박힐 때까지 예전의 그 길,
이제는 끊어져 무성해진 수풀더미 앞에
하냥 서 있고 싶은 그런 저녁이 있다
나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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