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물빛

by 류.. 2013. 2. 18.

 

 

내가 죽어서 물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가끔 쓸쓸해 집니다


산골짝 도랑물에 섞여 흘러 내릴 때,
그 작은 물소리를 들으면서
누가 내 목소리를 알아 들을까요?

냇물에 섞인 나는 물이 되었다고 해도
처음에는 깨끗하지 않겠지요


흐르면서 또 흐르면서,
생전에 지은 죄를 조금씩 씻어내고
생전에 맺혀있던 여한도 씻어내고

외로웠던 저녁, 슬펐던 앙금들을 한 개씩
씻어 내다보면, 결국에는 욕심 다 벗은
깨끗한 물이 될까요


정말 깨끗한 물이 될 수 있다면
그때는 내가 당신을 부르겠습니다

당신은 그 물속에 당신을 비춰 보여 주세요.
내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 주세요


나는 허황스러운 몸짓을 털어 버리고 웃으면서,
당신과 오래 같이 살고 싶었다고
고백하겠습니다

당신은 그제서야 처음으로 내 온 몸과
마음을 함께 가지게 될 것 입니다


누가 누구를 송두리 째 가진다는
뜻을 알 것 같습니까

부디 당신은 그 물을 떠서
손도 씻고 목도 축이세요

당신의 피곤했던 한 세월의
목마름도 조금은 가셔지겠지요

그러면 나는 당신의 몸 안에서
당신이 될 것 입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죽어서
물이 된 것이 전연 쓸쓸한 일이
아닌 것을 비로소 알게 될 것 입니다

 

 

 

 

마종기

 

 

 

   영화 별들의 고향(1974)  ost  '사랑의 테마'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 한도 끝도 없는 유정이라니  (0) 2013.05.15
[스크랩] 당신에게 말 걸기 - 나호열  (0) 2013.03.12
나는 가끔...  (0) 2013.01.03
성탄 기도  (0) 2012.12.18
때로는 江도 아프다  (0) 2012.12.07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