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시장(牛市場)에서 극장까지 가는 길은
영화처럼 슬펐어요
새벽이면 안개 덜 걷힌 길을
고삐 잡힌 소들 걸어와
입 꾹 다물고 외지로 나갈 트럭만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 길,
영물이라 제 운명을 안다더니만
철든 녀석들이 흘린 퉁방울 같은 눈알들
툭툭 발에 채이는 신작로엔
그래서 늘 자갈투성이었죠
용각산 같은 먼지가 노을에 묻힐 무렵
극장 간판엔 십자성 반짝이고
선술집에서 소변보러 나온 술꾼들이
휘청이며 어둠 속으로 들어설 때면
애수에 젖은 문희가 오늘은 또 누구를 기다리는지,
산다는 것은 잠깐이어서
철없이 자갈길 걸으며 걷어찬 적도 많고
문희처럼 사랑하고 실연도 하지만
그래요, 유행가 가사처럼
이제와 새삼 낭만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은
재개발로 곧 없어진다는 우시장
그 길 한 켠에
아주 가끔씩 올려지는 추억의 명화가
지금 상영중이거든요.
호호 여주인공요? 문희는 아니에요.
고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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